유기풍 서강대학교 총장의 이번 중도퇴임은 남양주 캠퍼스 건립 무산 사태가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이사회 측은 학교의 재정상황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학교 측은 이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예수회의 집단 이기주와 무능함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입장이다.
유 총장은 29일 서강대 본관에서 임기 5개월 남긴 채 퇴임 의사를 밝혔다. 남양주 캠퍼스 건립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면서 이에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남양주 프로젝트는 서강대학교가 경기도 남양주시에 제2캠퍼스를 건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사회의 승인 아래 7년 전부터 추진돼 온 이 사업은 서강대가 제2의 도약을 위한 '서강 글로벌 융합컬리지'를 만드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2010년 2월 학교 측은 경기도, 남양주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첫발을 뗐고, 2013년 7월엔 신부들이 과반이던 이사회를 통과했다. 유기풍 총장은 산학부총장 시절인 2009년부터 3년간 해당 사업을 주도했다.
이 사업은 최근 상세협약을 통한 마무리 단계까지 와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사회는 뒤늦게 추진 중단을 결정했다. 돈이 문제였다. 이에 학교 측은 동문들이 약정한 340억원의 기부금과 적립금 100억원에 이어 남양주시로부터 땅값 375억원을 면제받고, 현금 125억원 등을 추가 지원 받기로 하면서 재정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사회의 제동은 그치지 않았다. 건립에 필수 절차인 '교육부 대학위치변경 승인신청' 안건을 지난 5월에 이어 7월에도 부결시켰다. 이사진의 절반을 차지하는 예수회 신부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가능했다.
재정문제가 해결되면 캠퍼스 설립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던 이사회가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프로젝트 추진을 중단시키고 있는 것은 변화와 개혁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학교 측은 보고 있다.
◇"이사회는 예수회의 소유물"
학교 측은 이번 건립이 무산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예수회 중심의 지배구조를 꼽고 있다. 이사장이 예수회원인데다 이사회의 과반이 예수회로 구성돼 사외이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결로 이를 밀여붙였다는 설명이다.
또 최근 급조된 '이사장 소통 TFT'의 경우 이사나 교수가 아닌 예수회 신부를 팀장으로 하고 있고, 이사회 운영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학생들과의 협상도 이사회가 아닌 신부들이 나서고 있다고 학교 측은 말했다.
서강대는 지난 1960년 미국인 예수회 신부들이 설립한 학교다. 창학 초기 미국인 신부 중심의 예수회는 헌신, 봉사정신으로 학교를 이름을 알렸지만 현재는 학교, 재학생, 동문들의 강한 저항과 반발에 직면해 있다.
유 총장은 "지금 서강대는 예수회의 사유물과 다름없다"며 "정제천 신부가 한국예수회의 정상 자리인 관구장이 되면서 재단의 파행적 학교 경영이 삼화됐다"고 강조했다. 누적돼온 예수회의 독선과 파행의 부작용이 남양주 프로젝트 추진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났을 뿐이라는 게 유 총장의 입장이다.
◇힘 보태는 동문회 재학생
유 총장은 최근 아돌포 니콜라스 로마 예수회 총원장을 향해 "서강대가 7년째 적자를 계속하고 있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예수회는 이를 해결할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남양주 캠퍼스 설립 계획을 둘러싼 예수회와 동문, 교수, 학생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으로 공동체 전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예수회는 겉으로는 서강대학교의 발전과 예수회 교육이념 실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독선과 집단이기주의에 따라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유 총장은 "이사회의 파행적 학교 운영이 갈수록 심해져 6만 서강 동문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심지어 예수회가 학교 운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강대 재학생들과 동문회는 학교 측에 힘을 싣고 있다. 총동문회는 예수회원의 이사 인원을 이사회 정수의 4분의 1인 3명 이하로 줄여야한다고 보고 있다. 예수회원만이 이사장을 맡도록 한 학교법인 정관규정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이 문제에 대해 찬반 입장을 정하지 않았지만 남양주캠퍼스 진행 여부에 대한 확정을 요청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유총장은 현재 서강대 지배구조 개선의 기본은 예수회가 학교 경영에서 손을 떼고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사회 내 예수회원의 비율을 축소해야 한다는 동문측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한편 이사회는 이날 "유 총장이 이사회에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기자회견부터 열었다"고 유감을 표명하며 "구성원들의 합리적 판단과 화합을 위해 총장이 사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양주캠퍼스는 중장기 계획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하자는 차원에서 사업을 유보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