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운드화의 날개없는 추락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지난 2일(현지시간) 보수당 대회에서 내년 3월 안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직후 파운드화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3일 국제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는 한때 달러당 1.28달러대 초반으로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인 7월 초 기록한 31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네덜란드 금융 대기업 ING의 제임스 나이틀리 이코노미스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파운드는 영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스코틀랜드의 독립 문제, 파운드의 기축 통화 지위 등 3가지 관점에서 리스크를 안고 있다”며 파운드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건 영국이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으로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인 EU에서 떨어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이 단일 시장에서 퇴출될 경우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이 작용한 탓이다.
현재 브렉시트 협상의 쟁점은 영국의 이민 제한 방법과 단일 시장 참여 지속 여부인데, 내년 프랑스와 독일에서 대선과 총선이 잇따라 치러질 예정이어서 협상이 정체되거나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는 회의론이 거세다.
또 중요한 건 영국이 어떤 탈퇴를 선택하느냐는 것이다. 영국 내에서는, EU와의 관계가 악화하더라도 엄격한 이민 제한과 국경 관리를 실시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역내 무관세의 단일 시장 참여 지속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온건파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에 대해 테리사 메이 총리는 BBC방송에서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하는 한편, “이민을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EU 측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단일 시장에 남고 싶다면 이민을 받아 들여야 한다”며 “좋은 것만 취하려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놨다. 영국에만 혜택을 주면 ‘이동의 자유’라는 유럽 통합 이념을 뒤흔들게 될 수도 있는 만큼 양보의 여지는 없다는 이야기다.
영국 보수당 내에서도 의견 대립은 심각하다. 강경파의 선봉 격인 데이비드 데이비스 EU 탈퇴 담당 장관은 “단일 시장에 머물러있는 상태에서 이민을 컨트롤 할 수는 없다”며 단일 시장에서의 퇴출도 감수한다는 입장이다. 리암 폭스 국제무역장관도 신흥국과 자유 무역 협정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EU의 단일 시장에 묶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필립 해먼드 재무 장관은 “가능한 한 단일 시장 접근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영국의 EU 탈퇴 절차는 리스본 조약 50조에 근거해 영국이 EU에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한 뒤 2년 동안 진행된다. 합의가 안 되면 영국은 2년 뒤 자동으로 EU를 탈퇴하게 된다. 나머지 EU 회원국이 만장일치 동의하면 협상 기간은 연장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