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집권당이 민생을 팽개치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정권에 대한 의혹 눈 돌리기?, 거대 야당에 대한 비판여론 형성?, 보수결집 효과?,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도 그렇다. 이번에 보이콧을 풀면서 새누리당의 손에 쥐어진 건 하나도 없다. 보이콧 해제 조건으로 내세운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는 ‘사과’로 수위를 낮추고도 받아내지 못했다. 여론의 비판은 야당이 아닌 여당으로 향했고, 보이콧과 동시에 단식에 돌입했던 이정현 대표는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누가 봐도 새누리당의 백기투항이다.
여당이 이 지경이 된 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서다. 정 의장의 ‘맨입’ 발언은 의장으로서 부적절했음에 분명하다. 의장이 야당의 입장을 대변한 셈으로, 이 대표가 해임안과 함께 단식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다. 그렇다한들 엄밀히 따지면 법적으로 책임질 일은 아니다. 국회법에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강제하는 조항이 없다. 국회법 제20조 2항은 ‘의원이 의장으로 당선된 때에는 당선된 다음 날부터 그 직에 있는 동안은 당적을 가질 수 없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여당이 보이콧 배경으로 삼은 건 더욱 무리수였다. 야당 단독으로 장관 해임안을 가결한 건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 행사다.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것과 같은 격이다. 그런데 억지로 불법 행위라고 몰아가려다 보니 일이 꼬이고 말았다.
여당의 보이콧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초 추가경정 예산안 처리 때도 정 의장의 개회사 발언을 문제 삼아 본회의 참석을 거부한 적이 있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야당이 추경안 처리에 발목을 잡았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했다. 특히 당시는 정부가 추석연휴 이전 예산을 집행하기 위한 추경안 통과 데드라인으로 삼았던 시기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호들갑을 떨었던 만큼 추경 편성이 급하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 의장이 개회사에서 했던 발언은 “고위 공직자가 특권으로 법의 단죄를 회피하려 한다”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겨냥한 것이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요구하는가 하면, 사드 배치와 관련해 소통 부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발언이라고는 해도 추경안 처리를 거부할 만큼 도를 벗어났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아무리 여소야대라지만, 집권당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런 점에서 의사 일정 거부는 신중했어야 했다. 가뜩이나 국민 불신이 넘치는 정치권이다. 툭하면 보이콧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더 이상 여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