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두뇌기업에 거는 기대

입력 2016-10-0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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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모바일,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융복합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산업계의 화두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사물인터넷과 자율주행자동차, 바이오 기술, 3D 프린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수혜기업으로는 어떤 회사가 있을까? 통상 구글이나 페이스북, IBM, 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IT 산업의 거인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1차 수혜기업으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제조기업을 꼽는다. 사물인터넷이나 자율주행차, 3D프린터 등이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현재보다 필요한 반도체 숫자가 몇 곱절은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비슷한 이유로 애플의 신형 스마트폰 아이폰7이 잘 팔린다거나 화웨이, 샤오미 같은 중국 후발 휴대폰 업체의 추격이 거세질 때마다 뒤에서 남모르게 항상 웃는 기업은 대만의 광학렌즈 업체 라간정밀이다. 주요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의 제품에 라간의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가 탑재되기 때문이다. 라간정밀은 글로벌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 한창 인기가 있는 듀얼카메라 분야에서 강점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지난 7월에 빚을 내면서까지 영국 모바일 반도체 설계업체 ARM을 약 320억 달러(약 36조 원)에 인수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국 업체인 ARM은 디지털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술 기업으로 반도체를 직접 만들어내는 생산라인은 갖고 있지 않지만 디지털 기기 제조회사를 상대로 반도체칩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지식재산 라이선스를 판매하고 소비자 제품에 들어가는 칩 한 개당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받는다.

이처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제품을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핵심 역할 부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이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의 몸값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팔다리는 고생하더라도 두뇌에 해당하는 역량을 갖춘 기업은 계속해서 잘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갖춰진 것이다. 팔다리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기기 구동에 필요한 반도체 같은 두뇌를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이 창조하는 부가가치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획·설계 분야를 지칭하는 두뇌산업의 세계시장 규모는 2012년 9000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 이 중 국내 시장 규모는 500억 달러가량 되지만 아직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소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디자인, 엔지니어링 산업처럼 지식재산으로 고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분야는 대규모 시설 투자 없이도 창의적 아이디어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주의 깊게 벤치마킹할 만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제품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기획·설계 분야의 전문인력이 부족한 데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에는 아직 기업 규모가 작기 때문일 것이다. 반도체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선 두뇌에 해당하는 분야 상당수가 일본이나 미국 기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산업통상자원부와 필자가 몸담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서는 제조업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업종의 경쟁력을 키우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시스템온칩(SoC), 엔지니어링,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디자인 등 기획 설계를 통해 완제품의 부가가치를 더해주는 기업을 이른바 ‘두뇌역량 우수 전문기업’으로 지정하고, 2018년까지 총 200개 기업을 집중 육성하고자 한다.

기술의 융합 트렌드가 가속화될수록 앞서 언급한 두뇌 업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두뇌 업종은 고급인력의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창조경제형 기업의 본보기라 생각한다. 스타트업 기업인들의 도전정신, 기존 대기업, 중견·중소기업의 지속적인 혁신 노력에 두뇌 전문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더해진다면 4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몇몇 분야에서 점차 가시화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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