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시리아 내전과 악화일로의 러·미 관계

입력 2016-10-1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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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러시아대사·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시리아 내전은 많은 한국인에게 먼 나라의 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는 러·미 관계 악화의 원천이고, 거기서 생긴 문제가 돌고 돌아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원래 시리아는 러시아의 우방이다. 러시아의 유일한 해외 기지가 거기 있을 정도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소수 알라위파인데 강한 국내 통제 체제와 러시아와 이란의 국제 지원을 기반으로 해왔다. 그러나 오랫동안 다수 수니파를 억압해온 결과로 내전이 발생하였다. 반군은 온건파로부터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이슬람국가(ISIS), 쿠르드까지 다양하며 미국과 사우디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반군 간에도 상호 대적하므로 전황은 복잡하다.

내전 초기 미국은 이라크 전의 교훈으로 군사 개입을 꺼렸다. 이후 ISIS의 득세가 우려되자 공습을 시작하지만 정부군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 시기 러·미 관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악화하고 있었다.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는 휴전에도 불구, 간헐적 전투가 계속되었고 미국은 러시아에 반군 지원 중단을 요구하였다.

그러다가 러시아는 2015년 아사드의 요청을 근거로 급거 시리아에서 공습을 시작하였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겨냥점이 있었다. 군사적으로 정부군을 부양하고 러시아의 입지를 높이면서, 미국의 대 테러 전에 동참하는 모양을 취하여 미국에 대러 협조로 해법을 찾을 것을 각인시키려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공습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관계가 악화된 미국과 새 협조를 모색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말이다. 러시아는 시리아를 공습하면서 우크라이나 상황은 안정시켰다. 러시아 특유의 대미 신호인 셈인데 그 방법은 공세적이었다.

또 러·미가 대 테러전을 함께하지만 누가 테러리스트인지에 대해 견해가 달랐다. 러시아는 미국이 지원하는 일부 온건 반군을 테러리스트라고 보았다. 실제 전장에서는 온건 반군과 극단 세력이 공조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의 공습은 우려를 증폭시켰다. 러시아는 반군 전반을 공습하였다. 기세가 오른 정부군이 반군의 주요 거점인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자 미국에 휴전과 인도적 지원이 급선무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러·미가 작은 전구(全區)에서 서로 다른 의도를 갖고 작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양측이 기본적인 정보 교류를 하면서 꾸려왔으나 본격적인 협조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던 터였다.

강화된 군사 협조에 대해 미 국방부는 러시아의 진정성을 의심하여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국무부를 중심으로 러시아와의 협의가 추진되었고 어렵사리 1주간 휴전, 인도적 물품 전달, 그 후 러·미가 공습 목표를 협의하고 합동작전을 편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그대로 이행되었다면 의미 있는 협조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그 긍정적 여파가 우크라이나에 미치는 일까지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망적 사고였다. 일이 선순환으로 가기에는 현장이 너무 불가측했고 불신의 골은 깊었던 것이다. 휴전 직후 미군이 시리아 정부군을 ISIS로 오인하여 공습한 사건이 터졌다. 미국은 오폭을 인정하였으나 러시아는 합의를 무너뜨리려는 미군 일각의 고의적 행동이라고 보고 맹비난하였다. 그러다가 유엔의 인도적 지원 트럭이 공습을 받아 2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소행이라 하였고 러시아는 부인하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은 러시아를 야만적이라고 비난하였다. 이후 휴전 합의는 무너지고 러시아와 정부군은 알레포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였다. 병원이 피습되고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가 나왔다. 이제 미국은 이를 전쟁 범죄라 부르고 있다.

알레포의 함락이 머지않았고 인도적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다. 러시아는 그간 미국과 해왔던 무기급 플루토늄 처리를 중단한다고 선언하였다. 미국은 시리아 관련 대(對)러 협의를 중단한다고 하였다. 러시아는 다시 시리아에 요격 미사일 S-300을 배치한다고 하였다. 이 시스템은 미군기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지금 미·러 관계는 탈냉전 이래 최저점이다. 이제 러시아는 미 정권 교체기를 활용하여 시리아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새 행정부가 어찌할까?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한 호의를 표해왔으므로 다소 기대를 가질 수 있으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은 다르다. 러시아가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컴퓨터를 해킹하여 클린턴에게 타격을 주려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개입을 부인하고 있다.

한편, 최근 러시아 언론에 300억 달러에 달하는 푸틴의 개인 재산과 관련된 이메일이 해킹으로 유출되었다. 배후 관련설이 난무하였다. 기자들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존 브레넌 국장에게 관련 여부를 묻자 브레넌은 미소를 지으며 푸틴이 미 대선에 개입한 적이 없듯이 미국 정부도 러시아 정치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받아쳤다.

이처럼 사안이 정상에까지 얽혀들고 있는 점도 일을 어렵게 하고 있다. 러·미 관계가 악화하면 그 여파는 전방위적으로 미친다. 북핵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가 북핵 문제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방향을 거스르는 현상은 완연하다. 러시아의 대외 언술을 보면 관점이 미·북 양비론으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후 안보리가 의장 성명을 논의할 때 러시아는 한·미의 군사훈련이 미치는 악영향도 병기하자고 하여 의장 성명이 무산된 적이 있다. 몇 주 후 북한이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고서야 러시아는 병기 요구를 거둬들였다. 이제 비슷한 일이 생길 여지는 커졌다고 보아야 한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HAD·사드)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에 대미 견제 의식이 있음은 물론이다. 러시아는 이미 유럽 배치 미사일 방어망을 두고 미국과 대립해왔고, 이제 유사한 방어망이 극동에 확대되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 악화일로의 양국 관계가 여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처럼 시리아 상황은 나비효과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알레포를 둘러싼 공방전을 먼 나라의 일로만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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