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기업의 세계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은 세계적인 IT업계의 거물이 된 삼성전자도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일개 기업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반도체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세계 반도체 톱10에 들어 있던 일본 미쓰비시그룹의 미쓰비시연구소는 같은 해에 발표한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작은 내수시장 △관련 산업의 취약성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삼성전자의 열악한 규모 △빈약한 기술 등 5가지 이유를 들어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성공할 수 없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삼성이 D램 사업에 진출할 당시 국내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1982년 KDI는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는 인구 1억 명, GNP 1만 달러, 내수 판매 50% 이상이 가능한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산업으로 기술·인력·재원이 없는 우리에겐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1982년 당시 청와대에서조차 “반도체 같은 불확실한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국민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삼성 측에 사업 자제를 요청했을 정도였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1971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집적회로(IC)를 개발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가 1위를 차지했고, 모토로라 페어차일드 내셔널세미컨덕터(NS) 시그네틱스 NEC 히타치 아메리카 마이크로시스템 미쓰비시 유니로이드 등이 톱10을 형성했다. 미국 기업 7곳, 일본 기업 3곳이 반도체 시장을 나눠 점령하고 있었다.
일본 반도체 업계의 전성기였던 1991년에는 NEC, 도시바, 히타치가 세계 1~3위를 휩쓸었고, 후지쓰 미쓰비시 마쓰시타까지 포함한 6개 일본 기업이 세계 톱10을 차지했다.
33년이 지난 2016년 미쓰비시연구소는 현재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 답은 시장이 말해준다. 당시 삼성의 반도체사업 진출을 무모한 도전이라고 폄하했던 미국과 일본 반도체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포함한 세계 IT업계의 거물이 되었다.
20세기까지 ‘산업의 쌀’은 철강이었지만, 21세기부터 반도체가 대신할 것으로 예상하고 과감하게 투자를 감행했던 이병철 선대 회장의 선구안은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삼성이 반도체사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면 그의 모험이 지금처럼 격찬을 받을 수 있을까?
결국 결과가 성공적이어서 당시 이병철 회장의 결단은 혜안(慧眼)으로 평가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회장은 한국경제를 살린 영웅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단 삼성의 반도체 진출 역사만 결과가 과정을 합리화한 것은 아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자동차 독자 생산 결정을 둘러싼 비화 역시 불세출의 영웅담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정주영 회장은 1977년 5월 어느 날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리처드 스나이더로부터 자동차 독자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 부품을 수입해 조립 생산하라는 반(半) 협박성 권고를 받았다. 스나이더 대사는 △협소한 한국의 내수시장 규모 △한국의 낮은 자동차 부품산업 수준 △높은 무역장벽으로 인한 자동차 수출의 어려움 등을 그 근거로 거론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 산업은 기계·전자·철강·화학 등 전 산업에 미치는 연관 효과나 기술 발전과 고용창출 효과가 대단히 큰 현대 산업의 꽃으로, 한국이 선진 공업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설사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붓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훗날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는 일이어서, 그것을 보람으로 삼을 수 있다며 그의 권고를 거부했다는 비화는 정주영 회장 관련 영웅담의 백미(白眉)다.
그러나 이런 영웅담도 39년이 지난 2016년 현대자동차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무시할 수 없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회자되는 것이고,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만약 현대자동차가 도산해 버렸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보잘것없는 회사에 그쳤다면 정주영 회장의 영웅담은 한낱 필부의 오기로 폄하됐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위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성공한 경부고속도로 건설, 박태준 회장의 포항제철 건설 등도 결국 성공했고, 우리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겪은 모든 어려움과 곤란이 미화되고 칭송되는 것이다. 실패했거나 성과가 낮았다면 우리의 기억에서 이미 오래전에 잊혔을 것이다.
올림픽 정신은 승부보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업과 직장에서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두었다가는 거덜 난 날건달이 되기 십상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경쟁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대중이 환호하는 스포츠 스타 뒤에는 오랫동안 노력했으면서도 경쟁에서 뒤처졌거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눈물을 훔치면서 쓸쓸히 운동장을 떠나는 수많은 무명선수가 있다. 식사시간 무렵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줄을 서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퇴직금을 쏟아 넣고 시작한 식당인데 파리만 날리다가 큰 손실을 보고 접어 더 큰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기가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분야에 진출해 최선을 다해야 성공도 할 수 있고 출세도 할 수 있다.
경영상의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현실은 성공과 실패의 그림자가 항상 엇갈린다. CEO는 향후 투자방향을 예측하고 한정된 재원과 시간을 쏟아 부어 자신이 전력을 기울일 향후 사업부문 혹은 주력제품을 개발한다.
결단의 순간에 CEO들이 느끼는 긍정적인 전망과 부정적인 예측은 서로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전망이 비록 80:20 비율이라도 20%의 부정적인 전망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려했던 20%의 전망이 현실화되어 최악의 시나리오로 진행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러한 이유로 CEO들은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사회정의상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성공하면 영웅 대우를 받고 실패하면 무능하고 못난 사람으로 전락해, 결국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은 그만큼 냉정하고 비정하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성공해야만 한다.
바로 여기서 CEO가 평소 역학(易學)을 공부해 절체절명의 중요한 순간에 활용할 필요성이 생긴다. 역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삶의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경제 체제하에서 ‘일자리와 부(富)의 창조 근원’이랄 수 있는 민간기업의 CEO들은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필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리스크 매니지먼트 수단으로 역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더욱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