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거기, 엿 좀 드실라우

입력 2016-10-19 13:54 수정 2016-10-2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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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엿 먹어라” “엿 바꿔 먹었네” “엿 같네”…. 이 표현들 속의 엿은 단순히 단맛 나고 끈적끈적한 식품을 의미하지 않는다. 눈앞의 달콤함에 유혹돼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행동을 꾸짖을 때 “엿 바꿔 먹었네”라고 한다. 근거 없이 생긴 말도 아니다. 어린 시절 엿장수의 신명 나는 가위 소리에 이끌려 말짱한 냄비나 요강 등을 주고 엿 몇 가락을 먹다가 혼이 난 기억들이 있으리라. 군것질거리가 귀하던 시절의 재미난 추억이다.

“엿 먹이다”, “엿 먹어라”는 누군가를 골탕 먹이거나 속여 넘길 때 쓰는 표현으로, 한마디로 욕이다. 왜 욕이 됐는지 여러 설이 있는데, 중학교 입학 경쟁이 치열했던 1965학년도 입시 때의 ‘무즙 파동’이 가장 유력하다.

1964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지역 전기 중학입시 자연과목에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서울시공동출제관리위원회가 제시한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다. 이 문제로 당락이 갈린 일부 수험생의 학부모들은 ‘무즙’도 정답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직접 무즙으로 엿을 고아 문교부(현 교육부) 등에 솥째 들고 찾아가 “무로 쑨 엿이다. 엿 먹어라!”라고 외친 열성 부모들도 있었다. 결국 무즙도 정답으로 인정돼, 해당 학생들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추가 합격자들의 전·입학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부유층 집안의 자녀들이 경기중 등 명문학교에 부정 입학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가 청와대 비서관 등 부정 입학 관련자를 서둘러 해임했지만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문교부 차관, 서울시교육감 등의 옷을 벗겼다. 이 사건 이후 ‘엿 먹어라’라는 욕설이 유행했다.

50여 년이 지난 2016년 가을, 대한민국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20·정유연에서 개명) 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및 학사 특혜 논란으로 난리다. 2015학년도 수시전형 체육특기자로 지원해 최종 합격한 과정만 봐도 ‘신(?)의 딸’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행운만 이어질까? 입학 이후엔 교수로부터 “이 교과를 통해 더욱 행복한 승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깍듯한 인사도 받은 그녀다.

딸 같은 그녀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싶다(교육비는 거절!). 중간고사 대체 과제물로 제출한 ‘마장마술의 말 조정법’ 리포트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해도해도 않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왠만하면 비추함.’ 대학생의 리포트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오자와 비속어투성이다. 우선 ‘안’과 ‘않-’의 바른 쓰임을 보자. ‘안’은 용언 위에 붙어 부정 또는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 ‘아니’의 준말이고, ‘않-’은 동사나 형용사 아래에 붙어 부정의 뜻을 더하는 보조용언 ‘아니하-’의 준말이다. 따라서 ‘안’은 서술어를 수식할 수 있으며, ‘않-’은 ‘-지 않-’의 꼴로 주로 쓰인다. ‘왠만하면’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왠’은 ‘왜인지’의 준말 ‘왠지’에만 쓰인다. ‘웬만’은 ‘웬만하다’의 어근으로, 이로부터 형용사 ‘웬만하다’와 부사 ‘웬만히’가 파생했다. 망할 새끼, 비추(추천하지 않는다는 뜻) 등은 격이 낮고 속된 말이니 쓰지 말기를!

갈등의 중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19일 물러났다. 입시와 학사관리의 특혜는 없었단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는 법! 130년 전통의 이화여대가 배꽃같이 순결한, 투명한 ‘이화(梨花)’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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