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jtbc의 ‘비정상회담’에서 들었다. 우리말 잘하는 외국 젊은이 10여 명이 한 주제를 놓고 자기네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거나 ‘한국인들은 그런 부분에 너무 과민하다’는 식으로 왁자지껄 중구난방 식 토론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몰랐던 외국의 풍습과 관행, 제도를 들으면서 웃기도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한다.
‘비정상회담’의 주제는 시청자가 낸다. 시청자들이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는 나는 비정상인가?’라고 고민을 써 보내면 그중 하나를 주제로 골라 토론한다. 젊은이들이 응모하는 ‘비정상회담’에 ‘아재’도 지난 나 같은 ‘할배’가 응모하는 건 그야말로 ‘비정상’인 것 같아 이 지면에 내 고민을 털어놓고 ‘나는 비정상인가요?’를 물으려 한다. 앞으로 여러 번 물을 것 같아 순서도 매기려 한다. 오늘이 첫 번째다.
대통령의 발언에 북한 관련이 많아졌다. 아니 요 며칠 새는 북한 관련 발언뿐이다. 4대 구조개혁도, 경제 혁신 3개년 계획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냥 북한이 아니다. “정신 상태가 통제 불능”인 김정은과 “주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겨냥하고 있다. 북한 주민에겐 빨리 자유의 품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그렇게 해서 통일이 되면 좋겠는데, 대통령의 북한 발언이 잦을수록, 강도가 높을수록 나에게 전달되는 진실성이 전만 못해서 문제다. ‘북풍’이라거나 ‘종북몰이’라는 좌파의 주장과 수사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통일에 대한 대통령의 ‘충정’을 내치 실패를 무마하려는 의도라고 의심하고 외면하는 나는 비정상인가?
수원과 용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광교산 중턱 능선 오솔길에 무명용사 추모 기념물이 있다. “이곳은 6·25 전쟁 당시 군사작전 중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국군 장병의 유해와 유품이 발견된 역사의 현장입니다”라고 짤막하게 새겨놓은 가로 50㎝, 세로 30㎝ 크기의, 자그마한 검정 비석이다. 양옆에는 작은 태극기가 깨끗하고, 가운데는 장미 몇 송이가 조화일망정 언제나 붉다. 맞은편에도 장미와 태극기가 똑같은, 같은 모양의 추모비가 있다.
“구멍 뚫린 철모일까? 다 삭은 군화일까? 녹슨 소총일까?” “어머니를 불렀을까? 여보를 찾았을까? 아이들 얼굴을 떠올렸을까?” 적탄에 맞았거나 총검에 찔려 처참히 죽어갔을 이 ‘무명용사’들이 남긴 유품과 마지막 부르짖음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떠올리며 비석을 스쳐 지나가던 어느 날 나보다 나이 서넛은 많을 한 중늙은이가 걸음을 멈추고 부동자세로 비석을 향해 거수경례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뒤돌아서서 맞은편 비석에도 경례한 후 산길을 올라갔다.
수십 번 이 능선을 걸으면서 이 비석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비석 앞에 멈춰 발을 모으고 추모의 경례를 하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아도 절대 괜찮을 것 같은 옷차림, 행색이던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가 “당신들이 목숨을 바친 덕분에 오늘 내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폄훼하면서 문득문득 광교산 무명용사의 기념물과, 그 앞에서 거수경례를 올리던 이 사나이의 얼굴을 떠올리는 나는 비정상인가?
2007년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 노무현 정권이 북한의 의견을 물어본 후 기권하기로 했다는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는 반드시 사실 여부가 확인되어야만 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당시 정권 참여자들의 반응과 답변은 며칠이 지났지만 “그렇다” “아니다”는 없고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북한의 반응을 점검하거나 정보를 수집했다면 참여정부의 높은 외교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발뺌뿐이다. 참으로 모호하고 책임회피적이다.
그들의 이런 답변은 예전에 들었던 ‘위기대처 3단계’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는 문제 자체를 부정하며 무조건 잡아떼라. 그 다음엔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법이 없다고 버텨라. 그 다음엔 해결 가능하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오래 걸린다고 우겨라. 그러다보면 대중은 잊어먹는다. 잘못을 다른 이에게 덮어씌울 수 있는 단계다”가 그 내용이다. 3류 기업, 3류 집단도 써먹지 않을 케케묵은 매뉴얼에 의지하는 그들을 어리석고 뻔뻔스럽다고 생각하는 나는 비정상인가?
광교산 등산길 입구에는 예비군 훈련부대가 있다. 주말이면 외출 나오는 사병들을 본다. 덩치는 크지만 수염자국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앳된 얼굴이 많다. 잘 먹고 잘 자랐지만 강인하고 끈질겨 보이지는 않는다. “요즘 스물하나, 스물둘이면 아직 애들이지. 쟤들에게 전쟁을 맡길 수 있겠어? 불쌍하기도 하고. 차라리 살 만큼 산 우리가 총 들고 나가 싸우는 게 낫겠다. 그나저나 전쟁이 벌어지려면 하루라도 일찍 터지면 좋겠어. 아직 근력 있을 때 터져야 더 이바지할 수 있지 않겠어?”
아! 이 평화롭고 평화로운 시대에 오래 살려고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나와 친구들은, 그러다가 끝내는 막걸리 한 사발에 ‘멸공의 횃불’ 군가 한 자락까지 뽑아내며 우울과 걱정에 빠져드는 우리들은 비정상인가 비비정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