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배 칼럼] 내년 노벨경제학상이 계량 경제학에서 나온다면?

입력 2016-10-25 10:58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해마다 10월 초는 노벨상 수상자가 결정되는 시기이다. 올해의 노벨경제학상은 올리버 하트(Oliver Hart) 하버드(Harvard)대 교수와 벵트 홀름스트룀(Bengt Holmstrom)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가 ‘계약이론’(contract theory)에 대한 공헌으로 수상하게 됐다. 계약이론은 미시경제학의 주요 연구 분야이며, 이 이론은 경제학뿐만 아니라 법학, 경영학이나 정치학에도 영향을 미쳤고, 정책 및 제도 수립 등 현실 경제에도 매우 중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선정이 발표되기 전에는 수상자와 경제학 분야에 대한 무수한 예측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올해는 누가 수상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가 수상자가 결정되면 주변에 있는 그 분야 전공자를 축하해 준다.

필자의 전공 분야인 계량 경제학에서 다음 번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어느 학자가 가장 근접해 있을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아마 찰스 맨스키(Charles Manski) 노스웨스턴(Northwestern)대 교수가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 맨스키 교수의 계량 경제학 분야에 대한 공헌은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데, 그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업적은 부분식별(partial identification)에 관한 이론이다.

경제 자료를 분석하려면 계량 모형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자료 그 자체가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는 경제 원리를 이해하거나 유용한 정책 수립 등 의미 있는 추론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량 모형을 회피할 수 없는데, 실제 분석의 어려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량 모형을 만들어서 경제 자료를 분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계량 모형을 만들면서 모형에 대한 가정(assumption)을 세우게 되는데, 계량 모형들을 구성하는 가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희소성과 합리성 등 경제 원리에 근거한 제약들이 있다. 둘째, 추정의 편의를 위해 추가된 가정들이 있다. 후자는 종종 함수의 형태(functional form)나 확률 분포에 관한 가정(distributional assumption)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맨스키의 부분식별 방법론은 추론의 결과가 후자와 같은 작위적인 가정들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양한 가정들을 적용해 봄으로써 모형의 가정들이 어떻게 추론을 바꾸는지를 살펴보는 데 부분식별 방법론이 유용하다. 예를 들면, 미시 자료를 이용하는 많은 실증 분석에서 개인 간의 관측되지 않는 이질성(unobserved heterogeneity)이 중요하다고 인식돼 왔다. 경제 이론은 많은 경우에 개인들의 이질성에 관해 어떻게 모형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이질성에 대한 확률 분포 가정이 얼마나 추론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중요한 실증 분석의 문제이다. 부분식별 방법론은 이럴 때 해답을 줄 수 있다.

이런 부분식별 방법론은 경제학 여러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그중, 임금 구조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노동경제학에서 많이 연구되는 주제 중 하나인 임금 구조 변화는 사회 불평등의 원인을 이해하려면 필수불가결한 연구 주제이다. 구체적으로, 학력이나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의 변화 분석이나 같은 집단 내에서의 불평등(within-group inequality)의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에서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개인의 노동시장에서의 참여에 관한 선택(selection into work) 문제를 어떻게 고려하느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개인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느냐의 결정은 임의로(randomly)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인한 것이므로 노동시장의 참가율과 임금 구조가 동시에 변할 때는 임금 구조의 변화를 분석하기 쉽지 않다. 개인이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원인과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의 관계에 대해 계량 모형을 수립하고자 할 때 강한 가정 없이는 모형의 식별(identification)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찰스 맨스키(Charles Manski) 노스웨스턴대(Northwestern) 교수
▲찰스 맨스키(Charles Manski) 노스웨스턴대(Northwestern) 교수
이의 대안으로 부분식별 방법론을 이용해 영국에서의 임금 구조 변화에 관한 연구 결과가 있다(Blundell, R., Gosling, A., Ichimura, H. and Meghir, C. (2007), Changes in the Distribution of Male and Female Wages Accounting for Employment Composition Using Bounds. Econometrica, 75: 323·363.) 이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 197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사이에 전체 임금 불평등과 교육 수준 내의 임금 불평등이 증가했고, 연령 간 차이도 증가했으며, 교육 수준에 따른 임금 격차도 증가했다. 남녀 임금 격차에서 25세 저숙련 여성 근로자들의 동일한 남성 근로자들과의 격차는 적어도 23% 이상 줄어들었지만, 40세 저숙련 여성 근로자나 대졸 여성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남성과의 임금 격차가 줄었다는 유의미한 근거가 없었다. 이처럼 제약이 적은 부분식별 방법을 이용해서 임금 분포 변화에서 유용한 실증 결과를 낼 수 있음을 보였다는 점이 놀랍고, 국내 자료를 이용해서 그들의 연구 방법을 응용 및 추가, 발전시키는 것이 흥미로운 미래의 연구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연구로, 산업조직론(industrial organization)에서의 연구 결과가 있다(Ciliberto, F. and Tamer, E. (2009), Market Structure and Multiple Equilibria in Airline Markets. Econometrica, 77: 1791·1828.) 이 연구에서는 완전정보(complete information)하에서의 게임(game)에서 시장에 참가한 회사들의 수익 함수(payoff function)를 추정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특히 회사들의 이질성(heterogeneity)을 강조해 시장에서 균형이 결정되는 과정에 대한 가정을 이전 연구에 비해 완화시킨 것이 주된 공헌이다. 그 결과 계량 모형이 부분식별되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저자들은 이런 방법론을 미국 항공운송업에 적용했다. 그 결과, 경쟁의 효과가 대형 항공사들(American, Delta, United)인지 혹은 사우스웨스트(Southwest)와 같은 소형 항공사인지에 따라서 달라졌음을 보였다. 또한 정책 실행에 관한 모의실험을 계량 모형 결과를 바탕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보였다. 특히, 모형의 식별이 제한된 구조적 모형(structural model)에서도 정책 실험(policy experiment)이 가능함을 보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분식별 방법론은 최근 10~15년간의 계량 경제학 내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이며, 이론적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른 분야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경제학 및 산업조직론 등에서 응용되기 시작했고,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중요한 실증 분석 틀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확률이 높다. 부분식별 방법은 자료의 미비함이나 계량 모형 불완전성을 편의적 혹은 작위적 가정으로 대체하지 않고 모형의 모수가 부분적으로만 식별되는 상황하에서도 유용한 결론을 얻을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부분식별 계량 모형에서 얻어진 결론은 상대적으로 좀 더 신뢰성이 높다. 이런 입장을 맨스키 교수는 다음과 같은 명제로 서술했다.

“신뢰성 체감의 법칙(The Law of Decreasing Credibility): 추론의 신뢰성은 유지되는 가정의 강도에 따라 감소한다(The credibility of inference decreases with the strength of the assumptions maintained.).”

강한 가정에서 수립된 강한 결론은 그만큼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 정답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실증 토대를 구축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맨스키 교수가 주창(主唱)하는 계량 경제학의 유토피아(utopia)인 셈이다. 그의 고견이 경제 정책 수립 및 실증 분석에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그날이 오길 고대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이재명, '위증교사 1심 무죄'..."죽이는 정치 말고 살리는 정치 해야"
  • "여보! 부모님 폰에 ‘여신거래 안심차단’ 서비스 해드려야겠어요" [경제한줌]
  • 갖고 싶은 생애 첫차 물어보니…"1000만 원대 SUV 원해요" [데이터클립]
  • 농심 3세 신상열 상무, 전무로 승진…미래 먹거리 발굴 힘 싣는다
  • ‘아빠’ 정우성, 아이 친모는 문가비…결혼 없는 양육 책임 뒷말 [해시태그]
  • 논란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선…막후 권력자는 당선인 아들
  • 국민연금, 삼성전자 10조 ‘증발’ vs SK하이닉스 1조 ‘증가’
  • "권리 없이 책임만" 꼬여가는 코인 과세…트럭·1인 시위 ‘저항 격화’
  • 오늘의 상승종목

  • 11.2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3,109,000
    • +0.04%
    • 이더리움
    • 4,828,000
    • +5.25%
    • 비트코인 캐시
    • 701,500
    • +1.08%
    • 리플
    • 2,023
    • +8.59%
    • 솔라나
    • 334,800
    • -2.36%
    • 에이다
    • 1,381
    • +2.83%
    • 이오스
    • 1,136
    • +1.07%
    • 트론
    • 276
    • -2.47%
    • 스텔라루멘
    • 710
    • +6.13%
    • 비트코인에스브이
    • 94,400
    • +1.4%
    • 체인링크
    • 25,040
    • +7.98%
    • 샌드박스
    • 992
    • +24.3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