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스캔들을 맞아, 상아탑에서는 정권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고 있다.
28일 각 대학가에 게대된 대자보는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비판하는 데 입을 모았지만, 각 학교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 따라 이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씩 다르기도 했다. 서울 소재 대학들의 대자보들을 둘러보며, 각 대학별로 이번 사태를 비판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관찰해보았다.
◇서강대 - “선배님, 서강의 표어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마십시오!”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에서는 동문인 박 대통령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에 대해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서강대 학생들은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라는 모교의 표어를 선배인 박 대통령이 더 이상 더럽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최순실 게이트 해결을 바라는 서강인 일동’이 붙인 대자보에는 “모든 서강인은 사상과 정견에 상관없이 서강의 자랑이지만 이번에 드러난 박근혜 선배님의 비참한 현실에 모든 국민들과 서강인은 충격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이어 대자보는 현재까지 드러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비판과 진상규명 등을 요구 등을 나열하며 말미에는 “오늘 우리 서강인들은 이 날에 목놓아 개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학생회관에 붙은 해당 대자보를 읽던 학생들은 “(대통령이) 어디가서 서강대 (출신이)라고 안하고 다녔으면 좋겠다”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이화여대 - “앗! 고마워요 달그닥 훅! 달그닥 훅!”
이화여대 학생들은 모교가 이번 사태의 주요 이슈 중 특례입학 비리의 당사자가 된 데 대한 허탈함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 이곳저곳에 붙은 작은 포스터들에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대 특례입학 논란의 중심이었던 말이 그려져 있었다. 정유라 씨가 정당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성실히 공부한 다른 학우들의 몫인 성적을 빼앗았다는 부조리가 ‘말’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됐다.
아무 설명 없이 “앗! 고마워요 달그닥 훅!”만 적혀있던 포스터는 그같은 부조리를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었다. “앗! 고마워요”라는 문구는 제출기한을 한참 넘겨 과제를 제출한 정 씨에게 담당 교수가 “앗! 첨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답장한데 대한 조소를 담은 문구였다. “달그닥 훅!”은 기한을 넘긴 과제물에 “구보는 3절 운동이다. 마음속에 메트로놈 하나놓고 달그닥. 훅 하면 된다”라고 적힌, 세간에 다소 수준 이하라고 평가되는 과제 내용을 비꼬고 있었다.
이대는 얼마 전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 건으로 학교 본부가 경찰을 투입하는 등 학생들과 크게 갈등을 겪기도 했다. 때문에 당시 갈등으로 붙었던 대자보들과 최순실 사태로 인한 대자보들이 뒤섞여, 이대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인 ECC(이화 캠퍼스 콤플렉스)의 유리벽은 수많은 종이가 덕지덕지 붙은 ‘종이 반, 유리 반’의 모습이었다.
◇“거리로 나가 진짜 실세인 국민들의 힘을 보여주자!”
학생들이 함께 궐기에 나서서 불만을 표출하자는 대자보를 붙인 학교들도 있었다. 동국대와 연세대에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 사태를 11월 12일로 예정된 ‘2016 민중총궐기’에 참여해야하는 이유와 연결시킨 대자보들이 게재됐다.
동국대 ‘동행 실천단’이라는 학내단체에서 붙인 대자보는 “‘비선실세’ 최순실 말고 ‘진짜실세’인 국민들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라며 “‘진짜실세’ 국민들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광화문에서 만납시다”라고 민중총궐기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연세대에서도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이라는 학내 단체가 “박근혜는 퇴진하라”라는 제목으로 “분노가 11월 12일 민중총궐기로 모여야 한다. 시위와 파업 등이 결합한다면 박근혜 퇴진이 현실적 요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다만 이같이 다소간 정파성을 띤 대자보를 읽던 학생들은 “솔직히 말해 백남기, 한상균과 최순실 게이트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라며 거리를 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JTBC의 비선실세 의혹 보도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온 27일 낮에는 한양대, 숙명여대 등에서 시국선언들이 이어지며 심상치 않은 대학가의 불만을 고조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