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1735.10.30~1826.7.4)는 건국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지명도는 낮다. 그는 벤저민 프랭클린 등과 함께 독립 협상 대표로 참가해 영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을 승인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를 이야기할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정치적 라이벌 토머스 제퍼슨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원래 그는 제퍼슨과 서로 존경하는 사이였다. 서른세 살의 젊은 제퍼슨이 독립선언서를 쓸 수 있도록 밀어준 사람이 애덤스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독립 이후 미국의 발전 방안을 놓고 대립한다. 애덤스는 연방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제퍼슨은 국민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며 지방 분권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덤스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두 사람의 충돌은 본격화한다. 애덤스 다음으로 득표수가 많아 부통령에 임명된 제퍼슨은 애덤스의 정책에 반기를 들며 애를 먹인다. 당시 애덤스는 미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영국과 프랑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이 무력까지 동원하며 위협을 가하자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것을 미끼로 프랑스 외무장관이 거액의 뇌물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미국인은 분노한다. 이 일로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게 되고 그때 애덤스는 프랑스 등 외국에 협조적인 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외국인법에 서명한다.
하지만 그것은 애덤스가 건너지 말아야 할 다리였다. 이 법은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악법으로 제퍼슨에겐 절호의 먹잇감이 된다. 1800년 제퍼슨은 몰표를 받아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애덤스와 제퍼슨. 이들은 분명 정치적으로 대립했지만 그 다툼은 결코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이 둘에 미국인들이 경의를 표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김대환 편집위원 daehoan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