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5일 영국에서는 화려한 불꽃축제가 열린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이후 ‘월가를 점령하라’ 등 각종 시위에서 항상 영화 속에 나오는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이는 참가자들이 등장한다. 이는 모두 가이 포크스(1570.4.13~1606.1.31)와 관련 있는 것이다.
가이 포크스는 1605년 11월 5일 의회 개원식에 맞춰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화약을 터뜨려 당시 종교 탄압을 벌이던 영국왕 제임스 1세를 폭살하려 했던 ‘화약음모사건’의 주동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포크스는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 등지에서 스페인군의 일원이 돼 신교도들과 싸웠다. 이후 영국 가톨릭 비밀결사에 포섭돼 화약음모사건을 주도하게 됐다. 무려 18개월간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진행했으나 10월 26일 몬트이글 상원의원이 익명의 편지를 받으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공모자 중 한 명이 같은 가톨릭 신자인 몬트이글 의원까지 죽을까 봐 편지를 보낸 것이다. 몬트이글 의원이 개원일 직전에 편지를 왕에게 보여주면서 의사당 지하에서 성냥을 가지고 대기하던 포크스가 잡혔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계획의 전말을 털어놓아 결국 공모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제임스 1세가 암살 위협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영국 의회는 11월 5일을 감사절로 지정했다. 포크스는 화약음모사건을 공모했던 13명 중 한 명에 불과했지만 결국 이 사건의 상징이 된 것은 물론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수백 년이 지나 가이 포크스는 다양한 소설과 만화, 영화를 통해 살아났다. 영어에서 일반적인 남성을 가리키는 단어 ‘가이(Guy)’의 유래가 바로 포크스다. 19세기만 해도 가이는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이었지만 미국식 영어에서 원래 뜻 대신 지금과 같은 의미로 변했다.
배준호 기자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