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민주화에서 공공화로

입력 2016-11-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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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려의 대문장 이규보의 글에 ‘이상한 관상쟁이’[異相者對]가 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찾는 그 관상쟁이는 어질다는 평판이 높은 이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고, 악한 사람에게는 “만인의 마음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어진 사람이 죽으면 백성들이 어머니를 잃은 듯 슬퍼할 것이며 악한 사람이 죽으면 다들 좋아할 테니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규보는 “진실로 관상술이 기이한 사람”이라고 탄복했다.

‘즉문즉설’ 강연으로 인기가 높은 법륜 스님은 최순실 씨의 공덕이 열 개도 넘는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의 50대 이상 성인들을 콘크리트 같은 지역주의에서 벗어나게 했고, 사회가 어찌되든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대학생들을 깨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여야가 합의해 거국내각을 구성한다면 야당도 국정에 책임을 져야 되니 경제활성화 법안 등에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없게 된다.

두 이야기를 종합하면 최 씨는 능력 있고 만인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셈이다. 역설적인 논리이지만 최 씨는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발전과 사회의 성숙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듣도 보도 못한 미증유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걱정스럽게 한다. 이 판국에도 갈피와 맥락을 잡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무지는 놀라움을 넘어 신기할 정도다. 야당과 상의 없이 총리 후보자를 발표하는 무감각, 종교계 인사들을 초청해 의견을 듣는 과정의 그 생각 없는 인선을 보라.

그리고 대통령을 둘러싼 집단, 박근혜 정부라기보다 박근혜를 이용한 이익집단이라고나 해야 할 사람들의 행태는 오죽 한심한가. 검찰에 불려간 정부 인사들의 행태는 역대 정권의 대통령 비리수사 당시 측근들과 크게 다르다. 충성심이나 동지의식이라도 있었던 역대 정권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소명의식 없이 권력을 누리고 단물만 빨다 제 살길 찾는 자들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꼭 난파선의 쥐새끼들 같다.

최순실 씨는 그나마 박 대통령에 대해 40년 가까이 한결같은 의리를 지켰다. 그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최 씨는 열심히 돕고 거들었다. 결국 열심히 잘못 산 꼴이 됐지만, 박근혜 정부의 공직자들은 그만한 의리도 없다. 열심히 잘못 산 것만 닮았을 뿐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1987년의 6·29선언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획기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6·29는 ‘독재 타도·직선 쟁취’를 이룬 민주화운동의 결실이었다. 제도로서의 민주화, 법령으로서의 민주화는 그 뒤 계속 발전해왔다. 하지만 민주화 세력의 독점성 배타성과 상호 투쟁이 두드러졌고, 사회 전반의 절차적 내용적 민주화의 정착은 요원했다.

대통령부터 법을 안 지키고, 뭘 지키고 뭘 삼가야 되는지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다. 필요한 것은 국민들, 특히 공직자들의 공개념이다. 자신만의 민주주의, 특정 집단만의 민주주의는 독재 이상의 해악을 끼친다.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은 바로 이 공공의식과 공개념이었음을 최순실 씨가 잘 알려주었다.

공공은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의 만족과 행복을 지향하는 단어다. 공공(公共)에서 公은 공평한 것, 공변된 것, 상대를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이고 공복이다. 그 반대는 사(私)다. 共은 한가지, 함께, 하나로 합하여, 같게 하다 그런 뜻이며 반대는 독(獨)이다. 바로 이 사와 독 때문에 문제가 터진 것이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에서 공공화로 이행하는 중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전화위복의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극복과 처리과정이 너무 길고 오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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