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그래도 가는 가을

입력 2016-11-0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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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가을

옥상에 올라가 베갯속을 널었다

나의 잠들이 좋아라 하고

햇빛 속으로 달아난다

우리나라 붉은 메밀 대궁에는

흙의 피가 들어있다

피는 따뜻하다

여기서는 가을이 더 잘 보이고

나는 늘 높은 데가 좋다

세상의 모든 옥상은

아이들처럼 거미처럼 몰래

놀기 좋은 곳이다

이런 걸 누가 알기나 하는지

어머니 같았으면 벌써

달밤에 깨를 터는 가을이다

시집 『뿔을 적시며』에서

친구에게서 베개를 얻었다. 메밀껍질로 속을 넣어 편하고 숙면에도 좋다고 선물을 받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벌레가 나왔다. 덜 마른 걸 넣은 것 같아서 옥상에 올라가 베갯속을 널었다. 벌레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기어 나왔다. 그러니까 이 시는 그 벌레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옥상은 아깝다. 나는 단독 주택에 산다. 아무 집이나 옥상은 넓고 깨끗해서 그냥 놀리기엔 아깝다. 그래도 빨랫줄을 매거나 장독을 갖다 놓는 일 외에는 유용하게 쓰기 어렵다. 때로 방을 한 칸 더 붙여 보거나 서재를 꾸민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어린애들 같은 생각도 해보지만 상상에 불과하다. 아무튼 옥상은 아깝다.

메밀은 김을 안 매도 잘 자란다. 예전에는 장마나 가뭄으로 기왕의 농사가 시원찮으면 갈아엎고 메밀을 심었다. 아니면 놀거나 척박한 땅에 씨를 뿌렸다.

아이들 돌잔치에 수수떡을 해 먹거나 한겨울 눈이 푹 빠지면 메밀국수를 눌러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고는 설설 끓는 아랫목을 파고들었다. 그때는 허기를 달래주는 농사로 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메밀밭을 구경 다니고 화초 삼아 사진도 찍는다.

깨 농사는 밭의 귀퉁이나 다른 곡식 넣기가 어려운 곳에 기름 몇 병 짤 정도로만 심는다. 김을 매거나 약을 치지도 않는다.

깨는 밤에 턴다. 저녁 이슬에 꼬투리가 눅눅해져야 털어도 멀리 튀지 않는다. 그런 날은 마당이 다 고소하다. 50년도 전에 나에게는 전깃불 대신 마당 높이 달빛을 걸어놓고 깨를 터는 어머니가 계셨다.

그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던 여름이 가고 단풍도 잘 들고 들꽃들도 아름다운 가을이 깊어가자 여름보다 가혹한 시련이 왔다.

대통령과 대통령의 사람들이 저지른 요사스러움과 문란함이 우리를 참혹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안 내려가려고 버둥거리는 대통령이나 그를 에워싸는 무리들을 보면 우리나라 가을 보기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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