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제의약품 생산 업체 3곳 중 1곳은 연간 생산규모가 10억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제약(제네릭) 시장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지면서 신생 기업이 대거 시장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세업체들의 난립으로 내수 시장에서 과열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완제의약품 생산 업체는 총 356곳으로 집계됐다. 2014년 299곳 대비 19.1% 늘었다.
기존에 완제의약품 생산업체 수는 지난 2009년 290곳에서 2014년 299곳으로 정체를 보였지만 지난해에만 57곳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문을 닫은 제약사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1년새 새롭게 의약품 생산을 시작한 제약사가 57곳에 달한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해 완제의약품 생산 실적이 10억원 미만인 업체는 124곳에 달했다. 2014년 51곳에서 2배 이상 늘었다. 전체 제약사 356곳 중 3분의 1 가량은 연간 완제의약품 생산량이 10억원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이들 124곳의 전체 생산규모는 총 183억원로 집계됐다. 업체당 평균 완제의약품 생산액이 1억4758만원에 불과했다. 전체 업체 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제약사 124곳이 생산하는 의약품 규모는 전체(14조8560억원)의 0.1%에 그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세 제약사들이 많아지면서 업체당 평균 생산실적도 크게 줄었다. 제약사 1곳당 평균 생산실적은 지난 2010년 527억원에서 지난해 417억원으로 5년새 20.9%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의약품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새롭게 시장에 뛰어드는 제약사가 증가한 것으로 진단한다.
특히 위수탁을 활용한 의약품 허가 규제가 크게 완화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14년 의약품을 생산하는 모든 공장은 3년마다 식약처가 정한 시설기준을 통과해야 의약품 생산을 허용하는 내용의 ‘GMP 적합판정서 도입’이라는 새로운 허가 제도를 시행했다.
이때 허가용 의약품을 의무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규정이 큰 폭으로 완화됐다. 기존에는 다른 업체가 대신 생산해주는 위탁 의약품이 허가를 받으려면 3개 제조단위(3배치)를 미리 생산해야 했다. 생산시설이 균일한 품질관리 능력이 있는지를 사전에 검증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적합판정을 통과한 제조시설에서 생산 중인 제네릭을 제품명과 포장만 바꿔 허가받을 때 절차가 간소화됐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허가 신청 수수료 90만원 가량만 부담하면 별도의 생동성시험과 허가용 의약품 생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신규 복제약(제네릭) 발매가 가능하게 됐다.
국내 한 중소제약사의 개발 담당자는 “기존에는 허가용 생산 제품을 모두 판매하지 못할 경우 무리한 지출로 이어졌다”면서 “허가용 의무 생산 규정이 완화되면서 시장성이 불투명하더라도 비용 부담이 크지 않아 위탁을 통해 새롭게 허가를 받는 의약품 개수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허가 규제의 강화는 전체 업체 수 감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010년과 2011년에는 완제의약품 생산 업체 수가 전년 대비 감소세를 나타냈는데, 이때는 ‘품목별 사전 GMP’라는 새로운 허가 제도가 도입된 직후다.
지난 2008년부터 시행된 품목별 사전 GMP제도는 모든 의약품은 3개 제조단위를 미리 생산해 항상 동일한 품질의 의약품이 생산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의약품 품질관리시스템 선진화를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일부 영세업체들은 신규 허가를 중단하고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약가제도도 제네릭 시장 진입이 수월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부터 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제네릭도 최고가격(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 의약품의 53.55%)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제네릭 진입 시기가 늦을 수록 가격이 떨어지는 ‘계단형 약가제도’를 운영했다. 최초에 등재되는 제네릭은 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 의약품 약가의 68%를 받고, 이후에는 한달 단위로 10%씩 깎이는 구조다.
과거에는 제약사들이 뒤늦게 제네릭을 발매할수록 낮은 가격을 받기 때문에 후발주자들이 무분별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지만 약가제도 개편 이후 시장에 늦게 진입해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제약사들은 뒤늦게 제네릭 시장을 두드리는 현상이 많아졌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의약품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최근에는 당초 완제의약품 사업과 무관한 계열사를 활용해 의약품 허가를 받고 영업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면서 “한정된 시장에 동일 제품이 무분별하게 뛰어들면서 과당경쟁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