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파문과 관련한 정국 수습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김병준 총리’ 카드를 접으면서 한 발 물러섰다. 여야 정치권에 ‘총리 추천’ 권한을 넘기면서 국정 정상화를 위한 물꼬는 트인 모양새다. 하지만 정국은 여전히 시계 제로다.
박 대통령은 9일 마비된 정국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종교계 원로와의 만남을 통한 여론수렴 행보를 이어간다. 이날 오후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청와대로 초청한다. 앞서 7일에도 박 대통령은 천주교ㆍ기독교 원로들을 청와대에서 만나 ‘최순실 파문’ 수습에 관해 가감 없는 의견을 들었다.
전날 박 대통령은 국회를 전격 방문해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지명을 사실상 철회하고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일단 국정 정상화의 첫 단추는 끼워졌다. 이날 정연국 대변인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 총리에게 부여할 권한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실질적인 권한을 드린다고 한 만큼 임명제청권 등 총리의 권한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국회 추천 책임총리’를 제안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총리에게 조각권(내각 구성권)까지 부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국회에서 총리 후보자를 추천해 주면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총리의 권한 범위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 후보가 결정된 후 국회와 협의돼야 하는 사항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 추천 총리를 배출해야 하는데 여야 간, 야당 간 눈높이가 다른 현실을 감안하면 합의점을 끌어내기까지는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이미 국회 추천 총리가 실질적인 내각 구성권을 갖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총리 추천권 수용을 일단 보류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내각 구성까지 험로가 예고됨에 따라 유일호 경제팀의 어정쩡한 정책 대응이 계속될 경우 경제는 더욱 나빠질 수 있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고 운영방향을 재정비해야 할 재계도 최순실 악재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청와대는 야당과의 협의점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도 허원제 정무수석이 국회를 방문해 (총리 관련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하고 협조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