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다섯 달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경기 하방압력이 높아졌지만, 트럼프 당선과 최순실 여파에 따른 정치ㆍ경제 불확실성이 운신의 폭을 좁혔다.
꺾이지 않은 가계부채 증가세도 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정부의 11ㆍ3 부동산 대책 효과와 새롭게 구성된 ‘임종룡 경제팀’의 정책을 확인할 시간도 필요했다.
1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11월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소수의견 없는 금통위원 만장일치였다.
◆ 트럼프 美 대통령 당선...정치ㆍ경제 불확실성 높아 = 경제 부진에도 한은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가로막은 것은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었다. 당초 한은은 힐러리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운용해 왔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트럼프가 당선이 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됐다.
11월 통방문구에서 이를 반영한 듯 “(세계경제는)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 및 신정부 정책방행 등에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앞서 이주열 총재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하면서 글로벌 교역의 회복을 이유로 들었다. 유가 반등에 따라 세계 경제 교역에 회복세에 들어가면 우리 경제 성장을 이끄는 수출 여건이 나아져 결과적으로 경제성장률이 올해 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가 당선되며 가능성은 줄었다.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며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관세율 상향 조정, 비관세 장벽 시행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총재는 “그런 공약들(TTP 틸퇴 및 FTA 재협상 등)이 정책으로 실현된다면 세계 교역은 물론 국내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미국의 경제 통상 정책에 많은 변화가 예상되지만 그 정도를 예단하기 곤란하고 지금부터 면밀히 지켜보고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미국의 12월 금리인상 연기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대다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2017년 중 적정 금리 인상 속도를 2회로 봤고, 현재로선 그런 전망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 가계부채 급증세는 여전히 ‘금리 인하’ 걸림돌 = 당국의 각종 규제에도 꺾이지 않은 가계부채 역시 금리 동결 결정의 배경이 됐다.
정부가 올해 2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며 가계부채를 옥죄기 시작했지만, 6월말 가계 빚은 되려 1257조원으로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당국의 8ㆍ25 대책 역시 가계부채는 억제하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만 가열시켰다는 평을 들었다. 게다가 정부가 최근 11ㆍ3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는 점에서도 한은이 이에 역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총재 역시 이날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저금리가 지목된다는 지적에 대해 “가계 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한데는 저금리와 그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공급이 주된 요인”이라며 부담스런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