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을 중심으로 최순실 정국의 출구를 모색하는 물밑 작업이 분주한 가운데 ‘국회추천 총리권한대행’이 유력한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 간의 영수회담마저 무산되면서 ‘100만 촛불시위’ 라는 거센 민심을 가라앉힐 대안은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 뿐이라는 데 결론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일단 총리 권한대행 체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강하게 선을 그은 상태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추 대표가 당내 반발에 밀려 하루도 안 돼 영수회담을 전격 취소하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 출구는 닫힌 모습이다. 야 3당이 ‘즉각퇴진’이나 ‘하야’등 강경 모드로 기울면서 대통령 임기 보장을 전제로 한 ‘2선 후퇴 - 거국내각’ 구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대통령 퇴진이나 조기 대선에 나설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정치적 부담에 야당은 탄핵 카드 선택에 머뭇거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자연스레 박 대통령이 여야에서 구성하는 거국중립내각에 전권을 내놓고 임기 단축을 받아들이는 ‘질서 있는 퇴진’이 본격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치적으로 ‘질서 있는 퇴진’이란 곧 ‘단계적 하야’로 해석된다. 대통령이 즉각 사퇴하지 않는 대신, 여야가 합의한 ‘권한대행 총리’에게 전권을 이양해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대통령은 약속한 일정에 따라 사임한 후 조기대선을 치르는 게 일정이다.
근거는 ‘대통령 궐위 또는 사고 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는 헌법 제71조다. 이 해법은 헌정사에 선례가 없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검찰조사까지 받게 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헌법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헌법 71조상의 ‘사고’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은 대통령이 직을 유지하면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사고’ 상태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대통령의 2선 후퇴는 위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 사고’는 기존에 심신상실이나 커다란 사고, 이런 걸 의미했는데 사고라는 것이 꼭 그런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 넘기는 의미의 ‘2선 후퇴’는 초헌법적 발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권한대행 체제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코너에 몰린 박 대통령이 앞으로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연국 대변인은 이날 영수회담 무산 이후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여부 등 후속조치 계획에 대해 “박 대통령이 숙고하고 계시니까 지켜봐 달라”며 “정국안정을 위한 후속조치 및 방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