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는 물론이고 장례식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의도 하지 말고 평상시 입던 옷 입고 마지막 길 갔으면 한다. 묘지나 납골당은 마련하지 말고 육신은 화장해 고향에 있는 산의 나무 아래 묻어주기 바란다. 제사는 지내지 말고 가족들이 모이는 일이 있으면 한 번 생각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수없이 말씀하셨던 것으로 ‘당부’라는 단어를 구사하며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최근 쓴 칼럼 ‘깔끔하게 지구를 떠나는 법’에서 어머니의 당부와 비슷한 내용을 적시했더군요.
농사짓고 자식 키우며 힘들게 살았던 어머니는 한평생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누며 살았던 범부입니다. 평범한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는 평생 권력도, 부도, 명예도 없이 살았지만 욕심 없이 깨끗하게 사셨던 삶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정 문제로 수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만든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은 100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장에서 드러난 국민의 바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다.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네가 무슨 대통령이냐고 해도 (박 대통령은) 거기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런 고집쟁이다. 고집부리면 누구도 손댈 수가 없다”라고 시사저널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한 말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명분과 이유를 내세우지만 권력욕을 비롯한 탐욕으로 국민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여론과 배치되는 행보를 계속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며 죽어서도 사람과 자연에 피해를 주기 싫다는 어머니의 다짐과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밝힌 “죽음은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요.
17세 때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의인이 돼 있을 것이다’라는 경구를 읽은 이후 잡스는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잡스는 죽음 앞에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 남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머니와 잡스를 이야기한 것은 권력과 탐욕에서 벗어나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수많은 국민이 들어올린 촛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앞으로의 일들을 결정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입니다.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들겠다”라는 내용이 담보되지 않은 허언의 정치적 수식어는 국민을 더 분노하게 할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늘 선택이 향후 국민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자식들을 위해 치열하게 사셨고 이웃과 더불어 욕심 없이 깨끗하게 사신 담백한 분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어머니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방식마저 어머니처럼 하고 싶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 수많은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촛불집회장에 나온 어린이들이 훗날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며 닮고 싶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