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서 비롯된 채권시장의 요동에 비상수단을 발동했다.
BOJ가 지난 9월 금융정책 틀을 변경한 이후 처음으로 고정금리로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프로그램(공개시장조작)을 시행한다고 17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BOJ는 이날 성명에서 “상환까지의 잔존 기간이 각각 1~3년, 3~5년인 중ㆍ단기 국채를 대상으로 조치를 시행한다”며 “2년 만기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 0.090%, 5년 만기는 -0.040%가 될 때까지 무제한으로 국채를 매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기대로 글로벌 채권시장에 대량의 매도세가 유입되면서 금리가 뛰었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번 주에 장기금리 기준인 국채 10년물 금리가 지난 9월 21일 이후 2개월 만에 플러스권으로 돌아섰다.
이에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가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매입 등 행동에 나설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 앞서 BOJ는 지난 9월 ‘장·단기 금리차인 수익률 곡선 조작을 통한 양적·질적 완화 추진’으로 금융정책의 틀을 변경하면서 급속한 금리 상승을 억제하고자 고정금리로 채권을 무제한으로 구입하는 조치도 도입했다.
이날 BOJ의 발표에 상승 기조에 있던 일본 국채 금리가 떨어졌다. 2년과 5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발표 이후 하락한 것은 물론 장기금리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장 초반 0.025%까지 높아졌다가 0.010%로 내려갔다.
무제한 국채 매입은 시장개입적인 성격이 강하고 채권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비상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어 지금까지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채권 매도 움직임이 활발해져 BOJ가 행동에 나섰다고 신문은 풀이했다.
매입을 시행하는 주체인 BOJ 금융시장국은 이날 “중ㆍ단기 국채 금리의 급속한 상승을 감안했다”며 “수익률 곡선 형성을 촉진한다는 현재 금융조정방침에 맞추고자 무제한 국채 매입을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구로다 총재는 이날 참의원(상원) 재정금융위원회에 출석해 “미국 국채 금리 상승에 따른 자동 금리 상승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새 금융정책 틀안에서 우리는 경제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조치가 실제 자금 투입보다는 시장에 BOJ의 의지를 알리는 효과를 기대하고 펼쳐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도카이도쿄증권의 사노 가즈히코 수석 채권 투자전략가는 “미국발 움직임을 시장이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자 BOJ가 시장에 신속하게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고 분석했다. 도이체증권의 야마시다 마코토 투자전략가는 “고정금리가 유통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시장원칙을 고려하면 아무도 자신이 보유한 국채를 팔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BOJ의 행동은 장기금리 상승은 허용하면서 단기금리는 낮게 유지하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시장도 이런 메시지를 받아들인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