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미쉐린 3스타, 500년 된 고(古)조리서 보면서 연구한 결과”

입력 2016-11-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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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서울신라호텔 라연 책임주방장…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한식, 인정받아 기뻐”

▲15일 오전 서울 중구 동호로 서울신라호텔 23층 ‘라연’에서 만난 김성일 책임주방장. “요리는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라며 기본을 중시한 그는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 2017’에서 최고점인 별 3개를 받았다. 28년 동안 한식만 연구한 김 책임주방장은 “호텔신라의 지원과 모든 스태프의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제공= 호텔신라
▲15일 오전 서울 중구 동호로 서울신라호텔 23층 ‘라연’에서 만난 김성일 책임주방장. “요리는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라며 기본을 중시한 그는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 2017’에서 최고점인 별 3개를 받았다. 28년 동안 한식만 연구한 김 책임주방장은 “호텔신라의 지원과 모든 스태프의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사진제공= 호텔신라

“맛, 재료는 물론 전통 한식을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옛날 한식을 어떻게 하면 현대적으로 재해석할지 고민했습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신라호텔 23층 한식당 ‘라연’에서 만난 김성일(53) 라연 책임주방장은 미쉐린(미슐랭) 3스타의 비결을 이같이 말했다. 지난주 그동안 베일에 가린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의 결과에서 호텔 레스토랑으로서는 유일하게 ‘라연’이 미쉐린 3스타를 부여받았다. ‘미쉐린 가이드’는 1900년 첫 발간 이후 100년 넘게 미식 문화의 국제적 표준 역할을 해오고 있다.

김 책임주방장은 미쉐린 3스타로 선정된 그때가 아직도 꿈처럼 느껴진다며 환한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1988년 서울신라호텔에 입사한 그는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28년간 정통 한식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것이 이 같은 결과로 보답 받은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아서 불안했었어요. 사실 미쉐린 3스타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했는데, ‘라연’ 이름이 3번 호명되고서야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기뻤죠”라고 말했다. 이어 “미쉐린 평가원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정통 한식’이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한식이 한류 문화를 넘어 한국을 찾게 하는 관광자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라연의 미쉐린 3스타는 호텔업계가 한식당을 기피하는 시기에 얻은 쾌거다. 비싼 호텔에서 ‘집밥’인 한식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정서 탓에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신라호텔은 한식당 ‘서라벌’이 문을 닫은 지 9년 만인 2013년 ‘라연’을 열었다. 김 책임주방장이 말하는 정통 한식은 전통적인 개념을 넘어선다. 전통이 궁중음식이나 향토 음식처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음식을 의미한다면 정통은 이를 어긋나지 않고 바르게 해석하는 음식을 말한다.

다음은 김 책임주방장과의 일문일답.

△평소 요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맛’입니다. 요리는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라고 생각합니다. 재료 본연의 맛이 중요하지요. 한 음식에 여러 가지 부재료를 겹치기보다 단순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양념도 여러 가지를 섞지 않고 메뉴에 가장 적합한 것을 찾고 있지요.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여, ‘제철·제산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라연의 대표 메뉴에는 완도선 전복이 쓰이고 있지요. 귀한 음식 재료이고, 건강한 재료입니다. 겨울에 들어서는 대구와 제주산 옥돔을 사용한 메뉴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맛을 내는 데는 특별한 연구 방법이 있나요?

“전통 한식을 보약 같이 즐길 수 있도록 500~600년 된 고(古)조리서를 보며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재료들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 건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옛날 레시피는 주먹구구식으로 돼 있어 유추 해석해 맛을 구현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옛날 음식은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냉동식품이나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속이 편안하고 소화가 잘됩니다. 요리 모양도 과하지 않게 표현해 내려고 하고 있지요. 라연은 매주 한두 차례 모여 ‘어울림 학습회’를 진행합니다. 한 주제를 두고 발표, 공감하면서 새로운 메뉴를 구상하는 것이지요. 또 조리, 식음, 기획, 구매팀이 함께 구성된 ‘제철 식자재 태스크포스(TF)’가 연간 100번 이상 전국의 산지를 돌아다니며, 언제 어디서 가장 맛있는 식재료가 나오는지 찾아내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동행하기도 하지요.”

△신라호텔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26살 늦은 나이로 신라호텔에 입사했습니다. 원래는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었죠. 요리는 21살 입대 후 취사병으로 있을 때 처음 시작했는데, 이후 호주 이민을 위해 요리사 자격증을 딴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편찮아지셔서 계속 한국에 남게 됐어요. 당시에는 19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때라 특급호텔에서 요리사를 많이 채용했습니다. 롯데, 워커힐 등 다른 특급호텔 서류전형에도 지원해 합격했었는데, 면접은 한 군데밖에 볼 수 없어 신라호텔을 선택했습니다. 삼성그룹의 고(故) 이병철 회장에 대한 부모님의 신뢰로 인한 것이었지요. 늦은 나이에 입사한 만큼 요리사이기 전에 직장인으로서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28년간 요리사로서 인상 깊었던 순간은 무엇인가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처음 외국에 나가 한식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경험입니다. 외국에 나간 것도 새로웠지만, 우리나라 음식을 외국에 선보이면서 애국심이 더 강해졌습니다. 당시 책임자가 아니라 그저 일원이었음에도 한국 요리사로서 자부심을 느꼈지요. 두 번째는 2000년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한식을 선보인 것입니다. 북한이란 단절된 나라에 제가 포함된 연합 조리사팀은 비행기가 아닌 버스를 타고 개성으로 넘어갔었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함해 230명 정도가 먹을 분량의 남한 음식을 북한에 선보인 것은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지난 7일 미쉐린 3스타에 선정된 것입니다.”

△보통 책임 주방장이라고 하면 거친 캐릭터를 떠올리게 되는데 라연에서 책임주방장으로서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내성적인 성격입니다. 평소 차분하고 인내심이 많은 편이지요.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는 스타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우유부단해 보일지라도 ‘외유내강’으로 신중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적당한 압박감과 긴장감이 있어야 발전합니다. 해외 국빈, 국내 유명인사들을 많이 만나는데, 무엇보다 ‘맛있다’고 평가해 주시는 고객이 우선이지요.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면 3~4일 동안 ‘무엇이 잘못됐을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라연 주방은 수석과 막내의 실력 차가 거의 없는 훌륭한 주방입니다.”

△삶에 있어 가장 추구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가화만사성’이라 생각합니다. 집이 편안해야 회사에서도 편합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죠. 회사가 집 같은 분위기여야 일할 맛이 납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지원도 큰 힘이 됐습니다. 해외 연수나 국내 벤치마킹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미쉐린 발표로 예약이 평소보다 20배가량 는 만큼 책임감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자만하지 않고 더 많은 경험을 쌓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누가 언제 찾아와도 항상 같은 수준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라연이 한식을 더 널리 알리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요?

“미쉐린 3스타는 받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워요. ‘미쉐린 가이드’의 최고 평점인 별 3개를 받으면 요리사에게 막대한 명성과 찬사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엄청난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요. 외국에서는 미쉐린 가이드 별점에 대한 압박으로 자살한 사건들도 있었어요. 최근에는 프랑스 브누아 비올레가, 2003년에는 베르나르 루아조란 요리사가 자살했습니다. 매년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보다 더 계절과 환경에 따른 메뉴를 구성해 보강할 계획입니다.”

◇김성일 서울신라호텔 라연 책임주방장은

김성일 서울신라호텔 라연 책임주방장은 1963년생으로 1988년 서울신라호텔 한식당에 입사해 28년간 한식 외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1990년 스위스 공항의 레스토랑 탑 에어(Top Air Restaurant) 한식 프로모션에 참여했고, 1998년 중국 광저우 화이트 스완 호텔 한식 프로모션에 참여했다. 2000년에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연합 조리팀 자격으로 한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5년부터 서울신라호텔 연회 한식섹션 책임주방장으로서 일해왔으며, 그해 말레이시아 5성급 호텔 싼야원화동팡쥬뎬(Mandarin Oriental Hotel Sanya), 2006년 인도 뉴델리 타지마할 호텔(Taj Mahal Hotel), 지난해에는 중국 더 웨스틴 시안 한식 프로모션에 참여했다. 2014년부터 현재 서울신라호텔 한식당 라연 책임주방장을 맡고 있다.

◇김성일 서울신라호텔 라연 책임주방장 약력

□ 1988. 8 서울신라호텔 한식당 입사

□ 1990. 2 스위스 Top Air Restaurant 한식 프로모션 참여

□ 1998.12 중국, 광저우 White Swan Hotel 한식 프로모션 참여

□ 2005. 2 서울신라호텔 연회 한식섹션 책임주방장

□ 2005. 5 말레이시아 Mandarin Oriental Hotel 한식 프로모션 참여

□ 2006. 3 인도 뉴델리 Taj Mahal Hotel 한식 프로모션 참여

□ 2015. 1 중국 Westin Xian 한식 프로모션 참여

□ 2014.12 現 서울신라호텔 한식당 ‘라연’ 책임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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