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9부(재판장 이정민 부장판사)는 23일 김옥순(87) 씨 등 5명이 일본 중공업 회사인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대한민국 역사 및 정치적 변동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우리 법원이 심리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어 “김 씨 등은 당시 만 12~15세 어린 소녀들이었음에도 가혹한 환경에서 위험한 업무에 종사했다”며 “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은 경험법 상 분명하다”고 밝혔다. 후지코시가 전쟁을 위한 일본 정부의 인력동원정책을 적극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했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1965년 한ㆍ일 청구권 협정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사라졌다는 후지코시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일본은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징용에 대한 법적배상도 완전히 부인했다”며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등이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국가가 국민의 동의 없이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김 씨 등의 연령과 강제노동에 종사한 기간, 노동 강도, 자유를 억압한 정도, 귀국 뒤 겪은 사회ㆍ경제적 어려움 등을 고려해 이들이 청구한 위자료 1억 원을 모두 인정했다.
김 씨 등은 1944~1945년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일본 도야마 현에 있는 후지코시 공장에서 군수 물품 등을 만들거나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이후 김 씨 등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 노동에 종사했다’며 지난해 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1억 원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