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17세기의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1632.11.24~1677.2.21)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만 이 말은 대부분 알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스피노자가 실제로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서구권에서는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한 말로 믿고 있으나 실제로 누가 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 명언만큼 스피노자의 철학을 잘 표현한 것은 없다는 평가다. 범신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로서 인간 역시 자연이라는 거대한 신 앞에서 필연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오늘 할 일을 묵묵하게 할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생각을 잘 알게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르네 데카르트,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와 함께 스피노자는 근세 대륙 합리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한때 랍비가 되는 훈련을 받기도 했으나, 스피노자는 범신론적인 입장을 바탕으로 유대교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 바람에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광신자가 휘두른 칼에 맞기도 했다. 이후 스피노자는 낮에는 안경 렌즈를 세공하고 밤에는 집필을 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1673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철학 교수로 초빙됐지만 사색의 자유가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해 단호하게 거절하는 등 평생을 철학자의 자세로 살았다.
버트런드 러셀은 “지적인 측면에서 스피노자보다 뛰어난 철학자는 많지만 윤리적인 면에서 그를 능가하는 철학자는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676년에는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를 만났으나 위대한 두 철학자가 서로의 사상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피노자는 렌즈 가공을 할 때 유리가루를 많이 마시는 바람에 45세의 한창 나이에 폐질환으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