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명과학이 14년간의 독립경영을 청산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독립경영만으로는 글로벌 제약사 도약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모 기업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 LG생명과학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활발한 투자로 자체개발신약 2개를 발굴하는 등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28일 LG생명과학은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LG화학으로의 흡수합병 안건을 통과시켰다. 소규모합병 형태의 흡수합병이다. 소규모 합병은 합병을 주도하는 존속법인(LG화학)이 합병으로 인해 사라지게 될 해산법인(LG생명과학) 주주들에게 신규 발행해 지급해야 하는 주식의 수가 회사 발행주식 전체의 10%를 넘지 않는 경우 진행하는 방식이다.
LG화학과 LG생명과학의 합병비율은 각각 보통주 1대 0.2606772, 우선주 1대 0.2534945이다. 합병 후 존속법인은 LG화학의 상호를 유지하고, LG생명과학은 해산된다. 합병기일은 2017년 1월1일이다. 이날 LG화학은 이사회를 열고 LG생명과학 흡수합병안건을 승인했다.
앞서 LG화학은 지난 9월12일 LG생명과학의 소규모 방식 흡수합병을 발표한 이후 반대의사통지를 접수했는데, 소규모합병 반대의사통지 주식 수가 합병을 무산시킬 수 있는 전체 주식총수의 20%에 미달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사업목적에 바이오 사업 수행 등을 추가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가결했다.
이로써 LG화학의 LG생명과학 흡수합병에 대한 제반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LG생명과학은 지난2002년 8월 독립경영을 시작한 이후 14년여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LG생명과학, 상업적 성공 실패..활발한 R&D 투자로 가능성 확인
업계에서는 지난 14년 동안 LG생명과학의 성과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사실 LG생명과학은 상업적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LG생명과학의 지난해 매출은 4344억원으로 2003년 1790억보다 142.7% 늘었다. 연평균 성장률은 7.7%에 그친다.
같은 기간 유한양행(3066억원→1조1209억원, 265.6%↑), 한미약품(2435억원→1조1132억원, 367,2%↑), 녹십자(1044억원→9129억원, 774.4%↑) 등 주요 상위제약사와 비교하면 외형 성장이 두드러지지 않은 모습이다.
수익성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 동안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2004년(14.3%)과 2007년(10.0%) 2번에 불과하다. 11년 동안은 영업이익률이 10%에 못 미쳤다는 얘기다. 올해 3분기 누계 매출 대비 10.2%의 영업이익을 기록, 역사상 3번의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대할만한 상황이다. LG생명과학의 설립 첫해(8~12월)를 포함해 올해 3분기까지 기록한 영업이익은 총 2683억원으로 매출 대비 6.0%에 그친다. 냉정하게 실적 수치만 따져보면 대기업 계열 제약사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표는 아닌 셈이다.
부족한 현금 창출 능력은 연구개발을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 LG생명과학의 올해 3분기 기준 현금성자산은 371억원에 불과했다.
사실 낮은 영업이익률은 왕성한 연구개발(R&D) 투자의 영향이 크다. LG생명과학은 출범 초기부터 매출액 대비 30%에 육박하는 R&D비용을 투자했다. 2009년부터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20% 아래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국내제약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투자다.
최근 국내제약사 중 가장 왕성한 R&D 투자 활동을 진행 중인 한미약품의 경우 매출 대비 R&D비용 비율이 20%에 다소 못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2000년대 초반 LG생명과학의 강력한 R&D 투자 의지는 업계에서는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신분야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했다. LG생명과학은 B형간염백신 ‘유박스B’를 비롯해 국내최초의 뇌수막염백신 ‘유히브’ 등을 해외시장에 공급 중이며, 국내기술로 처음 개발에 성공한 5가 액상혼합백신 ‘유펜타’는 2월 세계에서 7번째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전적격성평가(PQ)를 받고 국제 입찰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만 LG생명과학의 R&D 성과는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정도의 파괴력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당뇨약 ‘제미글로’의 경우 같은 약물기전의 약물들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백신 시장도 한정된 시장 규모 때문에 성장세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LG생명과학은 최근 들어 큰 폭의 매출 신장을 기록 중인데 중국시장에서 선전을 기록 중인 필러 제품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필러 시장의 경쟁도 점차적으로 치열해지고 있어 현재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LG생명과학의 투자 규모에 비해 R&D 성과가 내실이 부족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최근 연이어 초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한미약품의 경우 2010년대 들어 R&D투자를 집중적으로 늘렸을 뿐 기존에는 LG생명과학의 투자 금액이 월등히 많았다.
LG생명과학은 지난 2010년 정일재 사징 부임 이후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전념하자"는 전략으로 대사질환·바이오의약품·백신 등의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LG화학이 바통을 넘겨받게 됐다.
◇LG화학 자금 활용 年 3000억 이상 투자..R&D 시너지 기대
LG생명과학이 LG화학의 풍부한 자금을 활용하면 지속적인 R&D 투자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3분기 기준 LG화학의 현금성자산은 2조4288억원으로 LG생명과학(371억원)보다 65배 많은 수준이다. LG화학이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하는 가장 큰 이유다.
정호영 LG화학 사장은 지난 9월 LG생명과학 합병 추진 컨퍼런스콜에서 “LG생명과학의 연간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를 현재 1000억원 수준에서 3000억~5000억원 규모로 늘려 동시에 10~20개 신약 파이프라인을 가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자금 부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못했던 분야도 전략적으로 기회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LG생명과학은 지난 2012년 임상2상시험을 완료한 신약 ‘베시포비어’의 판권을 일동제약에 넘겼는데 이유 중 하나가 자금력으로 지목됐다. 임상3상시험 단계에서 가장 큰 비용이 소요되는데, ‘베시포비어’ 개발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면 다른 연구는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LG생명과학은 삼성보다 먼저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일본 제약사 모치다제약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LG생명과학이 만든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모치다가 일본에서 상업화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흡수합병 이후 삼성과 같은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으면 개발 속도도 더욱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LG생명과학은 바이오시밀러의 조기 상업화를 위해 모치다제약과 공동 연구개발을 더욱 긴밀하고 신속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LG생명과학의 신약 파이프라인 중 세포보호제 ‘네크로엑스(Necro-X)'와 같이 잠재력이 높은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투자도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네크로엑스는 과도한 활성 산소를 제거해줌으로써 세포 괴사를 방지하고 염증을 유발하는 인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저분자 화합물이다. 다양한 세포치료제로의 활용이 가능한 물질로 각광받았지만 아직 상업화 단계까지는 갈 길이 멀다. LG생명과학은 현재 네크로엑스를 활용해 다양한 분야에서 초기 연구를 진행 중인데 LG화학의 풍부한 자금이 투입되면 글로벌 진출과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시설투자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게 된다. LG생명과학은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내 16만5000㎡ 부지의 오송공장에 총 2000억원을 투자해 경구용 의약품, 바이오의약품 공장과 물류창고, 내용고형제 및 항체 임상샘플용 벌크 등의 생산체제를 구축했고 최근 충북도 및 청주시와 미래 바이오사업 생산시설 구축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2020년까지 총 1000억원 규모를 추가로 투자키로 했다.
LG생명과학 관계자는 “현재 흡수합병 이외에 향후 R&D 과제 개편이나 조직 재정비 여부조차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향후 더 많은 자금을 R&D에 투자하면 차세대 신약 개발 가능성도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