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1874.11.30~1965.1.24)은 독일 나치의 광풍으로부터 영국과 세계를 지킨 지도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그가 보여준 불굴의 용기와 리더십이 없었다면 세계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이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을 개시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에 영국은 1940년 초당파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일찍이 히틀러의 야망을 경고했던 처칠을 총리에 앉혔다. 괴팍하고 불같은 성격 때문에 적이 많았지만 전시라는 비상상황을 그보다 더 잘 이끌어갈 사람도 없었다.
당시 프랑스가 독일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영국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독일 공군이 연일 런던을 공습하는데도 처칠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영국 본토 항공전을 진두지휘하며 ‘피와 땀과 눈물’로 유명한 라디오 연설로 국민의 사기를 높였다. 히틀러가 영국에 화평을 제의했지만 처칠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또 고립주의인 먼로주의가 대세였던 미국을 설득해 1941년 3월 2차 세계대전 승리의 계기가 된 무기대여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미국 방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동맹국에 무기와 각종 물자를 지원하는 방안이었다. 미국의 물량 공세로 영국과 옛소련 등은 독일에 맞설 전력을 확보했다.
처칠은 종전 이후 총선에서 패배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뒤 소련의 공산화 위협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변모했다. 그가 1946년 미국 미주리 주 웨스트민스터대학 연설에서 언급한 ‘철의 장막’은 20세기 냉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편 처칠은 영국인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전쟁 중 경제학자인 W.H.베버리지에게 사회보장에 관한 연구를 맡겼다. 1942년 나온 결과물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