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구조조정에 있어 국책은행의 정책금융 지원 의지가 미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책은행이 해운업의 산업정책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단기 유동성 지원에 그쳤고, 경영정상화보다는 향후 떠맡게 될 손실에만 집중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해운업 구조조정, 정책금융 왜 실효성 없었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에 대한 금융은 단기 유동성 지원에 그쳤으며, 구조조정 방침 결정 후에는 조선업에 비해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는 실효적인 지원이 미약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운기업에 대한 정부(채권단)의 지원은 시장안정 유동화증권(P-CBO)을 통한 시장차입금 차환과 운영자금 기한 연장 등 단기운영 자금 성격에 그쳤다. 정부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각각 1조432억 원, 8387억원 등 총 1조9000억 원 규모의 P-CBO 발행을 통해 시장차입금을 차환토록 했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각각 5192억 원, 2857억 원 등 운영자금을 지원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은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유상증자와 출자전환 등 자본을 확충하는 행태로 추진됐다. 해운과 조선업에 대한 지원방식이 다른 것은 대우해양조선이 국책은행 소유기업이라는 지배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KMI는 분석했다. 국책은행이 해운업 경영정상화에 대한 관심이 조선업에 비해 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책은행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정책적 측면보다는 은행이 추가로 지게 될 위험을 중시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매각(1조2000억 원), 전용선 매각(2000억 원)을 통해 1조5000억 원을 마련해 부족자금을 모두 해결하는 등 자율협약 조건을 이행해 국책은행이 경영정상화 지원에 따른 위험이 줄어든 반면, 한진해운은 자율협약 조건을 이행하지 못해 잔여 채무를 정리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KMI는 “2015년 말 기준 한진해운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출은 일부 장기차입금에 한정돼 있었다”며 “사채권자 채무조정이나 영구채(약 2000억 원 규모) 출자전환 후 감자 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현대상선과 같이 국유화하기는 큰 부담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대한 여러 지적이 있으나 복잡한 채무구조의 문제로 인해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못한 것도 주요 요인”이라며 “결국 산업의 경제적 기여도, 청산 시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기보다 국책은행이 한진해운 추가 위험을 감당할 능력이 있었는가에 집중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책은행이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만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은 해운업 지원에 참여했던 신용보증기금의 손실이 우려된다는 지적에서도 방증된다고 KMI는 지적했다.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용보증기금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사채 차환에 지원한 금액은 각각 4944억 원과 4456억 원으로 대부분이 채무 재조정과정에서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운업 구조조정으로 최대 9000억 원에 가까운 손실을 신용보증기금이 떠안을 수 있다는 말이다.
KMI는 “결국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전에 정상화를 위해 부족하다고 추정된 3000억 원을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손실이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며 “이런 점에서 볼 때 국책은행이 해운업 지원 과정에서 산업적 측면과 타 기관을 고려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