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국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하면서 이탈리아에는 당분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 금융당국이 자국 내 3위 은행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몬테 데이 파스키 데 시에나(BMPS)에 대한 정부 차원의 구제금융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5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정정 불안으로 민간주도의 자본확충이 어려워지자 사실상 이를 포기하고 정부 주도로 BMPS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2014년 2월 집권한 렌치는 국제금융법규에 따른 채권자 손실분담(Bail-in)보다 자본확충과 구조조정 등을 통한 민간 구제 금융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렌치 총리의 사임으로 그가 주도한 금융안정화 정책이 방향성을 잃게 됐다.
이탈리아 금융권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BMPS의 50억 유로(약 6조2821억원)의 자본 확충 계획의 성패의 열쇠를 쥔 카타르의 10억 유로 투자 확보가 더 어려워지게 됐다. BMPS 자문사인 JP모건체이스와 메디오방카는 그간 피에르 카를로 파두안 이탈리아 재무장관과 함께 카타르 국부펀드인 카타르투자청(QIA)에 투자를 설득해왔다. 협상 마감시한인 이번 주말 투자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지만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만약 50억 유로 자본확충 계획에서 10억 유로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나머지 투자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렌치 총리 사퇴로 차기 행정부가 은행권 문제 해결에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이탈리아에 선뜻 투자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만약 BMPS가 자본확충에 실패해 이탈리아 금융권의 부실 문제가 또다시 부각되면 이 은행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은행의 연쇄부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FT는 BMPS를 포함해 중소형 은행 8곳이 줄도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오전 유럽증시에서 FTSE 전은행주지수는 한때 4.8% 급락했다가 낙폭을 2.2%로 줄였다. 이탈리아 증시서 BMPS는 4.2% 하락했고, 유니크레딧과 방코포포라레는 각각 3.4%와 7.4% 떨어졌다. 이날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8bp 급등해 유럽 채권 시장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