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들이 6일 대거 국회 청문회장에 불려나오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988년 일해재단 비리 관련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주요 그룹 총수가 한꺼번에 국회에 소환된 것이며, 사상 유례없는 규모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가 사실상 재계 청문회로 바뀌면서 ‘검찰조사 → 국정조사 → 특검조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추궁에서 ‘대가성’ 여부 공방이 본궤도에 진입했다.
이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복잡한 심정만큼이나 무거운 표정으로 나타난 이 부회장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체 답변을 하지 않았고, 시종 정면을 주시했다.
이어 도착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청문회 막판 준비 작업에 온 신경을 집중한 듯 다소 지친 기색으로 취재진과 마주했다. 신 회장은 “아, 네”라며 짧게 취재진의 질문에 답한 뒤 수행원들과 함께 청문회가 열리는 본관 2층 245호로 향했다. 올해 78세로 청문회 출석 총수 중 최고령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취재진의 질문에 “잘해야지요”란 답변과 함께 무거운 표정으로 청문회장으로 입장했다. 반면, 김승연 한화 회장은 “기업의 입장을 밝힐 좋은 기회”라고 언급해 대조됐다.
이날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9개 그룹 총수들은 이재용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이다. 이들 총수는 9시 45분 모두 입장을 마쳤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청문회는 종료 시간을 따로 정해 놓지 않았다. 국조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차례로 각종 의혹에 대해 질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총수들은 원고 없이 대중 앞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탓에 위원들의 날이 선 질문에 진땀을 빼는 모습이 역력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대선 비자금’과 2003년 ‘차떼기 대선 자금’ 수사 때 주요 기업 총수가 검찰에 대거 소환됐으나,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앞서 국정감사에 신동빈ㆍ조양호 회장 등 일부 총수가 증인으로 불려 나갔지만, 이번처럼 매머드급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총수들의 모습이 TV로 생중계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청문회장 밖에서는 이런 상황이 외신에까지 실시간으로 보도되면서, 기업 관계자들은 총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기업 전체의 평판과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정조사특위 소속 의원들은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 사면과 면세점 선정 문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외압 의혹 등과 관련해 총수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 추궁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