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의 중구난방] 갈 길 먼 ‘갑질’ 근절

입력 2016-12-07 10:58 수정 2016-12-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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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2부 차장

#A백화점 B브랜드 화장품 매장. 한 소비자가 찾아와 틴트를 구매했다며 교환을 요구한다. 교환 사유는 뚜껑 이음매 사이로 내용물이 흘러나온다는 것. 직원이 제품 구매를 언제 했는지 물으니 3개월 전이란다. 잘못 들었나 싶어 직원이 다시 물으니 제품을 구매한 지 3개월이 확실하다. 일반적으로 입술에 바르는 틴트는 매일 사용할 시 2~3개월이면 쓰임새가 다한다. 더군다나 3개월 동안 제품을 떨어뜨리는 등 본인의 부주의로 파손될 여지도 충분하다. 직원이 본사 규정을 들며 교환 불가를 얘기하지만 소비자는 막무가내다. 매장에서는 더는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백화점 고객상담실로 연락해 클레임을 건다. 이내 상담실 담당자는 B브랜드 본사에 연락하고, 본사는 백화점과의 (갑을)관계 등을 고려해 소비자가 원하는 환불을 해 줬다.

#C백화점 D브랜드 화장품 매장. 사흘 전 백화점 행사 기간에 메이크업 테스트를 받고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가 찾아왔다. 피부 트러블이 발생해 환불을 원한 것. 통상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직원이 환불 처리를 하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행사기간 내 소비자에게 백화점에서 제공한 4000원짜리 커피 쿠폰 때문이었다. 제품을 환불하려면 제공 받은 커피 쿠폰 역시 반납하는 것이 백화점 규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용한 쿠폰을 반납한다는 게 기분이 나쁘다면서 소비자는 정신적 피해와 피부 트러블 치료비, 백화점에 다녀간 교통비를 받아야겠다며 백화점 고객상담실에 클레임을 걸었다. 상담실은 소비자 응대가 미숙했다며 매장에 책임을 일부 떠넘겼고, 주변 다른 고객에 대한 피해 등을 최소화하고자 결국 매장 직원 개인과 백화점 측이 절반씩 부담해 10만 원을 소비자에게 물어줘야 했다.

최순실 일가의 ‘갑질’로 다시금 회자하는 갑질 횡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14년의 ‘땅콩회항’과 최근의 최순실 갑질 등 대기업과 상류층 일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갑질은 이제 일상적인 현상이 됐다.

이러한 갑질 횡포는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수년째 사회 문제로 지적되면서 결국 정치권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전국적으로 최대 7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감정 노동자들이 악성 소비자에게 시달리며 겪는 고통은 앞에서 언급한 것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심각하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서비스직 종사자 10명 중 6명은 고객으로부터 폭언 등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시대가 바뀌어 백화점에서 악성 소비자 대응 매뉴얼을 내놓기도 했지만, 갑질을 근절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 일선(매장 직원)에서 규정에 따른 처리를 하려 해도 아직 ‘손님이 왕’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클레임을 무조건 해결해 주라는 기업(백화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입점 매장에 책임을 지우는 등 갑질 근절을 일견 포기한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손님은 왕이 아니다. 갑질은 인간 존엄성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다. 발본색원해도 모자라다. 그러려면 매장은 물론 기업 역시 악성 소비자에게 단호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권은 수백만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입법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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