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전경련] 산업 개발 시대에 멈춘 낙후된 시각… 결국 정경유착 통로로

입력 2016-12-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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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55년 만에 최대 위기

“반기업 정서 확산의 부작용만 키우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창립 5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순실 사태의 도화선이 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앞장선 일로 사회적 지탄이 커지며, 재계 내부에서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론이 뜨겁다. 최근 국내 재계 서열 1위로 전경련에 가장 많은 회비를 납부하고 있는 삼성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전경련은 ‘해체냐, 아니면 해체에 준하는 환골탈태냐’라는 기로에 서게 됐다.

◇정권의 모금창구 전락… 태생적 굴레의 한계 = 전경련은 한때 재계의 ‘본산’, 회장이 재계의 ‘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도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출범한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하며 산업화를 주도하고 초대 회장인 고(故) 이병철 삼성 명예회장을 비롯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이 전경련 회장을 맡았을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전경련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정권마다 숱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고리라는 비판이 일자, 전경련 회장을 맡겠다는 대기업 회장들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지난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 모금 논란과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대선비자금 제공,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논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때마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며 위기를 넘겼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설립된 태생적 한계에 따라 이후에도 정경유착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보수단체 어버이연합에 대한 전경련의 우회지원 논란에 이어 최근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관련한 정경유착 의혹 등이 제기됐다. 군사정권 시절뿐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전경련은 정부의 ‘정책 스피커’ 역할을 자인한 셈이다.

◇순기능은 옛말… 새로운 경제단체 역할 필요할 때 = 2011년 3월 10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회장단 회의에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이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라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당시 2개월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그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회적 이벤트로서 이름을 떨쳤다. 과거 정경유착이라는 오점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전경련의 순기능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이 같은 순기능을 대외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회장단 회의가 비공개로 바뀌면서, 대기업 총수의 참석은 더욱 뜸해졌다. 그 대신 각 기업의 임원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10대 그룹의 규모가 각자 커지면서 총수가 굳이 전경련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기업들이 회비는 내지만, 그 활동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후 전경련은 상근부회장이 이끄는 사무국 중심으로 체제의 변화가 생겼다. 상근부회장은 재계 현안이 생길 때마다 대기업 총수들과 관료들을 수시로 찾아다니며 의견 조율을 담당하고, 청와대와 정부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맡았다. 재계를 대변하는 창립 목적과 달리, 정치권의 민원 창구 역할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경련이 현재와 같이 베일에 싸인 조직으로 남는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의혹이 계속 불거질 것인 만큼, 감독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게이단렌(經團連·경제단체연합회)을 예로 들고 있다. 게이단렌은 지난 1993년 기업 정치자금의 알선 창구 역할을 포기했다. 자민당이 그해 총선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뒤 자민당 독주 아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돼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스스로 깬 것이다. 하지만, 게이단렌은 2014년 ‘사회공헌의 일환’을 명목으로 내세우며 1300여 회원사에 집권 자민당을 위한 정치헌금 촉구를 사실상 재개했다. 이에 현지에서는 정권과 재계의 밀월 관계를 비판하며 큰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감시와 견제 없는 개혁은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문제의 본질은 정권과의 교감이나 압력보다는 재단 설립 과정과 운영이 불투명하고, 여기서 의혹을 키우게 한 것”이라며 “현재는 변화된 한국 경제에 발을 맞출 수 있는 새로운 경제단체의 역할이 필요할 때다. 이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전경련 해체의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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