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판, 세상판] 후회는 언젠가 영화가 된다

입력 2016-12-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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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더디게 간다. 그런 해도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건사고가 많으면 그렇다. 기억해야 할 일이 많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2016년 12월 9일은 아마도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세상은 뜨거웠지만 극장가는, 영화계는 철퇴를 맞았다. 사람들이 도통 영화를 찾지 않았다. 수입된 외화들은 줄줄이 망했다. 지난여름 이상 폭염으로 극장가는 폭발했다. 극장만큼 시원한 데가 없고,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 극장만 한 곳이 없었던 까닭이다. 극장가 추산으로 올여름 매출은 예년 대비 20~25% 뛰었다. 허구한 날 적자 타령을 하던 (믿을 수는 없지만) 극장 관리자들은 오랜만에 표정관리를 했다. 영화도 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곡성’부터 시작해서 ‘아가씨’와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밀정’ 등등 사이 좋게 관객들을 400만~600만 명씩 나눠 가졌다. 정부가 ‘개판’이어도 영화 판은 알아서 살아간다는 말이 나왔던 이유다.

그런데 그 매출 신장률을 지난 10월 말부터 12월까지 고스란히 까먹었다. 아니, 그 이상이 날아갔다. 비수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극장가는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모두들 평일 저녁 6시 ‘땡’ 하면 집으로 돌아갔다. 8시 뉴스를 봐야 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새로 터졌나’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마다했다. 배달을 받아 ‘치맥’으로 세상 관전을 했다. 평일에는 그렇다 치고, 극장가는 주말이 대목인데 지난 7주간 주말에 다들 서울 광화문으로, 부산 서면으로, 광주 금남로로 나갔다. 정부가 적당히 개판이어야 했다. 너무 개판이면 영화가 망한다는 것을 톡톡히 보여 준 해가 됐다.

중국을 상대로 지난 5년간 내지 10년간 공들여 오던 영화 프로젝트들은 모두 무산됐다. 중국 시장을 보고 열심히 준비해 오던 영화인들은 시쳇말로 모두 쪽박을 찼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모 제작자가 말했다. “일절 홍보도 하지 말라는 거야. 중국에서 개봉을 하면서 말야. 내 이름도 다 숨기래. 다른 중국 사람 이름으로 바꾸래.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이 질문에는 지금 청와대에 유폐돼 있는 사람과 그의 비선 측근들이 대답해야 할 것이다. 갑자기 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는 들고 나왔는가.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대체?!” 정말 소리를 꽥 지르고 싶은 심정들일 것이다.

정치 투쟁이 경제 투쟁과 결합하면 그 휘발력은 상상 이상이 된다. 박근혜 탄핵이 사회 정의나 정치적 올바름 때문만이었다면 수백 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 그것도 두 달 가까이 주말마다. 사람들은 정말 못 살겠다고 뛰쳐나오고 있는 것이다. 영화인들이 전력을 다해 시위에 나섰던 이유는 대통령과 그 주변을 탄핵하고 응징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영화계가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사람은 영화를 봐야 한다. 권력자들일수록 더 봐야 한다. 영화 속 장면에 민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터널’에서는 여성 장관을 얼마나 속 터지게 그리는가. 최근 개봉된 ‘판도라’에서 대통령은 얼마나 무능하고, 총리는 얼마나 간악하게 그려지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나중에 어떻게 정신을 차려 수습책을 마련하는가. 그것이야말로 ‘판도라’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린 요소가 될 수 있을지언정 대통령이 좀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얼마나 강했으면 감독이 그렇게 캐릭터라이징을 해냈겠는가.

그러니 지금이라도 나가서 영화 좀 봤으면 좋겠다. 관저에 앉아서 막장 드라마나 보지 말고, 바깥 공기도 좀 쐬고…. 사람들이 극장을 가는 이유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셈이 됐다. 그러니 제발 뽑지 말자고 했을 때 얘기들을 들었어야 했다. 후회하면 뭐 하겠는가. 그 후회는 언젠가 영화로 대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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