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1. 병자호란기 공주 이씨

입력 2016-12-1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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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게 죽임을 당하느니…” 강화도서 스스로 순절

1636년 12월 14일, 공주 이씨(1607~1637)는 몸속을 파고드는 거친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여 세 아이들을 잃어버릴까 걱정되어 아이들 손을 부여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12일에 청나라 군대가 10년 만에 국경을 넘어 다시 조선 땅을 침략했다는 비보가 조선 조정에 전해졌다. 병자호란이다. 12월 14일 아침, 인조는 먼저 종묘의 신주를 강화도로 보내고 왕족을 피신시켰는데, 이 피란 일행 속에 이씨 가족도 포함되었다. 그나마 힘없는 일반 백성들은 이 피란 행렬에 끼지도 못하는 현실이었다.

이씨는 1607년에 경기도 안산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장백이며, 어머니 윤씨는 윤민일의 딸이다. 이씨는 총명해 한 번 문자를 들으면 잊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외할아버지가 시험 삼아 ‘사기’를 가르치고 외우게 하자 틀리지 않고 다 외웠다. 이에 놀란 외할아버지는 “열 명의 남자보다 낫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글을 익힌 이씨는 ‘소학’ ‘열녀전’ 등의 책을 섭렵했고 커서는 유교 경전과 역사에도 밝았다.

이씨는 1626년 스무 살의 나이로 세 살 연하의 윤선거와 혼인했다. 윤선거는 대사헌 윤황의 막내아들이자 당대 명유인 성혼의 외손자였다. 생원시, 진사시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할 만큼 문재로 명망이 있었다. 이씨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었는데, 그중 한 아들이 성리학자로 이름을 떨친 윤증이다.

병자호란 전황은 조선의 패색이 짙어갔다. 청은 전쟁을 빨리 종결짓기 위해 1637년 1월 22일 새벽을 기해 강화도 도하 작전을 개시했다. 그 결과 강화도는 하루도 못 견디고 함락됐다.

1월 23일 아침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씨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이씨는 여러 선비들과 의병 활동을 펼치고 있는 남편에게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냈다. 남편이 오자 이씨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에게 죽임을 당하느니 스스로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래서 얼굴이나 한 번 보고자 오시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차마 말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남편이 돌아가자 여종들에게 뒷일을 당부한 이씨는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목에 감아 맨 끈을 여종 2명에게 잡아당기게 해 자결했다.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이씨가 자결한 후 남편은 강화도를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남편의 술회에 따르면 남한산성에 계신 부친이나 한 번 뵙고 죽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부인이 자결하고 함께 의병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순절한 상황에서 본인만 살아남은 현실은 떳떳하지 못했다.

이씨의 죽음은 사후에 잊히지 않았다. 강화도에서 최초로 순절한 여성으로 역사에 남았다. 40여 년이 지난 1681년(숙종 7년)에 국가로부터 의로운 죽음으로 공인받아 정려를 받았다. 반면 남편 윤선거는 일생을 근신하면서 살았다. 윤선거는 재혼하지 않았으나 아버지 명으로 첩을 들여 세 명의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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