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고 나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신흥국 채권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다. 달러화 표시 채권 발행 비용이 늘어나면서 중남미와 동남아시아에서 지난 11월 현지 기업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전년보다 약 70% 급감했다고 21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불안정한 금융 환경 속에서 투자자들의 리스크 회피 심리가 더욱 강해져 지난달 신흥국에서 242억 달러(약 29조 원)의 자금이 빠져나갔으며 이는 3년 반 만에 최대 수준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신흥국 기업들은 사업이나 투자에 필요한 자금 대부분을 달러화 회사채로 조달하고 이자도 달러화로 지불하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ㆍ자국 통화 약세 상황이 계속되면 자금조달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달 중남미 기업 회사채 발행은 8건, 16억 달러에 그쳤다. 금액 기준으로는 전년 동월 대비 71% 급감한 것이다. 그나마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도 아르헨티나의 매크로은행과 산탄데르은행칠레 등 안정적인 사업을 유지하는 곳으로 한정됐다. 원자재 관련 기업들은 매월 10억 달러가 넘는 회사채를 발행해 왔지만 지난달 자금조달에 나선 업체는 한 곳에 불과했다. 중남미 기업들은 올 들어 10월까지 세계적인 저금리에 힘입어 전년보다 14% 늘어난 769억 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나 트럼프 당선으로 제동이 걸린 셈이다.
아시아에서도 회사채 발행을 유보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동남아 기업의 회사채 발행액은 29억 달러로 전년보다 65% 감소했다. 한국 카지노 운영업체 파라다이스는 1000억 원 규모 채권 발행 계획을 취소했다.
11월 한 달 간 달러화가 고공행진을 펼쳤다. 달러화당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9%, 브라질 헤알화가 6%, 말레이시아 링깃화가 7% 각각 하락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신흥국 투자를 미루게 된 것도 회사채 발행 급감 주원인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달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 중 70%가 채권이다. 도이체증권의 무라키 마사오 조사본부장은 “회사채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려는 투자자가 부족해 수급 측면에서 채권 발행이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기 때문에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또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신흥국 기업의 사업과 투자 계획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