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 책임, 정부가 더 크다"...못 박은 한은 총재

입력 2016-12-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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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공제' 언급 협조 요청에 역할론 내세워 선 긋기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완화적 통화정책 요구가 신경 쓰였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재정정책의 역할을 강조하며 반격에 나섰다. 전날 한은 본관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다.

이 총재는 “국내 기관뿐 만 아니라 해외 신용평가사라든가 해외 국제 금융기구들도 한국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재정정책의 여력을 꼽는다”며 “재정정책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얘기를 한다. 저도 그 주장에 동의한다”며 일침을 날렸다.

이는 지난 16일 가진 유 부총리와의 회동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만남에서 유 부총리는 중국 후한서에 나오는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하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협조를 강조했다. 이 고사성어는 같은 배를 타고 물을 같이 건너자는 의미로 고락을 함께 하자는 의미다.

유일호 부총리 입장에서는 한은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신행정부의 새 정책에 따른 불안과 국내 정치·경제 불확실성에 등 여건이 밝지 못한 탓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내년 3회 이상 금리를 올려 인상 속도를 높인다면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금리 인상이 신흥국 경기 침체를 유발해 우리나라의 대(對) 신흥국 수출이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높다. 노무라 증권은 아예 아시아 수출국 가운데 한국이 트럼프 당선 충격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난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0.4%포인트 낮춘 데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로 0.3%포인트 내렸다. 그동안 국책 연구기관이 다른 기관보다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한국 경제에 닥쳐올 위기는 더욱 예사롭지 않다. 이와 함께 KDI는 12월 금융통화정책회의 직전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한 셈이다.

하지만 이 총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15일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한 후 가진 간담회를 통해 ‘추가 금리인하론’에 사실상 제동을 걸어뒀다. 이 총재는“정부와 한은이 보다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필요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 단계에서 역점을 둬야할 것은 바로 금융안정”이라고 못 박았다.

어제의 경우는 한술 더 떴다. 이 총재는 정부의 예산안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앞서 이달 초 국회는 정부의 400조5000억 원 규모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유 부총리는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했다”며 ‘슈퍼예산안’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 총재는 “내년도 정부 예산은 완화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통상 명목성장률이 4% 내외인데, 총지출 증가율은 0.5%밖에 안되고, 총수입증가율에 비해서도 총지출증가율은 낮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보다 확장적 재정을 요구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한은은 금융시장 안정성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은은 금융 리스크 관리에 좀 더 역점을 둬야한다”며 “금융시장에서 리스크를 억제하는데 중심을 두겠다”고 말했다. 실물 경제 부양을 정부의 몫으로 돌리고, 한은은 본래 설립목표인 ‘금융안정’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다.

동시에 정책당국의 능력을 치켜세우며 정부가 나서야 됨을 에둘러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무디스라던가 신용평가기관이 우리 국내 경제에 대한 신용을 평가할 때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이 당국의 정책 여력이다”며 “한국의 제도적인 건전성과 당국의 정책역량이 앞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금리 인상과 가계부채 증가에 따라 통화정책 운용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한은으로서는 정부에 강력한 재정정책을 요구한 셈이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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