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발표한 항바이러스제 ‘한미플루’의 시장 점유율 자료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자사에 유리한 자료만 발췌해 공개, 시장 현장에서 혼선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1일 한미약품은 독감치료제 ‘한미플루’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섰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미약품은 “독감 유행주의보 발령 직후 처방량이 급증하면서 12월 1주차 점유율이 54.9%를 기록, 수입약인 타미플루의 점유율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발매된 한미플루는 로슈의 ‘타미플루’와 주 성분(오셀타미비르)이 같은 후발 제품이다. 타미플루 부속 성분 중 일부(염)를 다른 성분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특허를 회피해 경쟁 업체보다 먼저 복제약(제네릭) 시장에 진입했다. 오셀타미비르 성분 시장에서 타미플루와 한미플루의 1대1 경쟁구도가 펼쳐진 셈이다.
한미약품의 설명대로라면 시장에 데뷔한지 1년도 안된 제네릭 제품이 오리지널 의약품을 넘어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서 해당 자료의 신뢰성에 의구심이 들었다. 단기간에 오리지널 의약품을 뛰어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높게 평가할만한 성과지만 제약사가 자사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특정 한주만 따로 떼어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미약품이 인용한 유비스트의 원외처방실적 전체 자료를 직접 분석해봤다. 통상 시장 점유율은 매출이나 판매량 기준으로 집계한다.
우선 월 단위로 집계된 원외처방실적을 비교해 보면 타미플루가 한미플루를 압도했다. 올해 11월까지 타미플루의 누적 실적은 180억8811만원으로 한미플루의 16억4493만원보다 10배 이상 앞섰다.
본격적으로 독감치료제가 사용되기 시작한 최근 실적을 비교해봐도 타미플루와 한미플루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지난달 타미플루의 처방실적은 3억7035만원으로 한미플루(8314만원)보다 4배 이상 많았다.
한미플루의 매출 점유율을 보면 올해 누계는 8.3%, 11월은 18.3%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미플루가 타미플루를 제쳤다’는 한미약품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수치다. 한미플루가 타미플루보다 보험약가가 25% 가량 저렴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한미플루의 점유율이 40%를 넘어야 판매량이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판매량 점유율 추이는 어떨까. 유비스트가 주 단위로 집계한 판매량 자료를 보면 처방실적과는 다소 다른 수치가 나온다. 바이오스펙테이터는 지난 11월 첫째 주(10월30일~)부터 12월 둘째 주(~12월17일)까지 7주간 타미플루와 한미플루의 판매량을 비교해봤다.
타미플루와 한미플루는 총 4종(30mg, 45mg, 75mg, 현탁용분말)이 있는데, 단순하게 용량별 판매량을 모두 더하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용량이 30mg이든 75mg이든 그냥 똑같이 하나로 계산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11월 1주부터 5주까지는 타미플루 판매량이 한미플루보다 최소 2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12월 첫째 주에 한미플루가 13만4249개로 처음으로 타미플루(11만454개)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점유율을 보면 한미플루가 54.9%를 차지한다. ‘한미플루가 점유율 54.9%를 차지했다’는 한미약품의 주장이 이 대목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통계는 용량별 투여량을 감안하지 않고 단순히 제품의 판매 개수를 더한 수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실제 처방 용량과는 괴리가 있다. 현탁용분말 판매량 1개는 현탁액1ml를 의미한다.
현탁용분말의 용법·용량을 보면 현탁액 1ml는 알약의 6mg에 해당한다. 타미플루나 한미플루 30mg 한알은 현탁액 5ml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타미플루·한미플루 75mg은 현탁 제품 12.5ml와 같다. 타미플루·한미플루75mg과 현탁용분말1ml를 동일한 1개로 계산한다면 실제 처방건수와 복용량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탁용분말 1ml를 6mg으로 보정해서 계산해봤다. 알약의 경우 30mg은 판매량에서 30을 곱하고 75mg은 판매량의 75를 곱하는 방식으로 전체 판매 용량을 집계했다. 현탁용분말은 판매량에서 6을 곱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그 결과 판매량 수치는 현저히 다르게 나타났다. 11월 첫째주부터 7주 동안 단 한번도 한미플루는 타미플루를 추월하지 못했다. 판매량 집계에서 타미플루를 제친 12월 첫째주에서도 이 통계에서 한미플루의 점유율은 29.6%에 그쳤다. 매출 기준 점유율에 근접한 수치다.
한미플루는 현탁용분말의 판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오류다. 12월 첫 주 한미플루의 판매량에서 현탁용분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71.0%에 달한다. 타미플루의 현탁용분말 판매량은 ‘0’이다. 쉽게 얘기하면 1mg 용량 10개 판매한 것을 10mg 10개 판매한 것과 동일하다고 판단한 것과 같은 이치다. 통상 매출 기준으로 점유율을 계산하는데, 여러개의 용량으로 구성된 약물을 판매 개수로 집계해 점유율을 비교하면서 이 같은 왜곡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한미약품은 다양한 통계 중에서 자사에 가장 유리한 수치만 떼어 발표한 셈이다. 심지어 한미약품이 타미플루의 판매량을 제쳤다는 통계에서 가장 최근 자료인 12월 둘째주는 다시 타미플루가 앞섰는데도 한미약품은 그 전 주 자료만 제시했다.
물론 자사 제품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켜 홍보하는 것은 정당한 기업 활동 중 하나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를 회피하는 전략으로 가장 먼저 시장에 진입해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줄였다는 점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소비자나 투자자에 정보가 제한적인 전문의약품 관련 통계를 지나치게 유리하게 해석한 부분만 공개하는 것은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실제로 타미플루의 판매를 담당하는 종근당 내부에서도 한미약품의 여론전에 심각한 불편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국내제약사 중 글로벌제약기업에 가장 근접해있다는 한미약품이기에 실망감은 더욱 크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국내 제약산업 역사상 최대 성과를 냈지만 올해는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계약파기 공시 지연, 임상시험 사망 사고 지연 보고, 임상시험 지연 등의 수많은 의혹에 휩싸이면서 기업 신뢰도에 흠집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한미약품은 수 차례 사과문도 발표했다. 과연 수많은 의혹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한미약품 경영진은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