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S] ‘사업성 저하ㆍ파트너사 변심'..성장통 앓는 한국제약사들

입력 2016-12-28 13:24 수정 2016-12-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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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미ㆍ녹십자 등 해외 진출 좌초 속출..'신약 성과 많아지면서 실패사례 발생 불가피'

유한양행이 모처럼 성사시킨 신약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래 상대방의 계약 불이행이라는 특이한 이유에서다. 올해는 유독 국내제약사들의 해외 시장 진출이 중도에 좌초되는 불운이 끊이지 않는다. 제약사들의 연구개발(R&D) 성과로 신약개발이나 글로벌 진출 사례가 많아지면서 실패사례도 발생하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한양행 “中 파트너, 이유없는 계약불이행에 계약 해지”

28일 유한양행은 중국 제약사 뤄신과 체결한 항암제 후보물질 ‘YH25448'의 기술 이전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유한양행 본사 전경
▲유한양행 본사 전경
앞서 유한양행은 지난 7월 뤄신과 항암 신약으로 개발 중이던 ‘YH25448'의 중국내 개발, 허가, 생산 및 상업화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넘기는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유한양행은 뤄신으로부터 계약금 600만달러를 받고 개발 및 상업화에 따른 단계별 기술수출료(마일스톤) 1억2000만달러를 받는 조건이다.

전임상 단계에서 기술수출된 YH25448은 3세대 상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EGFR)억제제다. '이레사' 및 '타쎄바'와 같은 기존 EGFR억제 약물에 저항성을 갖는 변이성 비소세포폐암에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로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이 기술수출 계약은 유한양행이 지난 2008년 위장약 ‘레바넥스’를 중국에 수출한 이후 8년만에 이뤄진 신약 수출 계약이다.

이번 계약 해지의 이유로 유한양행 측은 “뤄신의 일방적인 계약불이행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알 수 없는 뤄신의 변심’으로 볼 수도 있다.

당초 뤄신은 유한양행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이후 중국내 임상시험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올해 말까지 계약금 600만달러를 지급키로 약속했다.

뤄신은 유한양행으로부터 ‘YH25448'의 전임상시험 자료를 받은 이후 아무런 후속조치를 진행하지 않았다. 임상시험 착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계약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유한양행은 지난 23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후속조치에 관한 확답이 없을 시 법적인 책임 및 계약해지 원인이 뤄신에 있다’는 내용을 통지했지만 뤄신이 계약이행에 대한 의사를 보이지 않아 계약해지를 결정했다.

유한양행 측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합의를 위해 중국을 직접 방문하는 등 계약이행 노력을 다했지만, 뤄신은 계약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로 기업 간의 신뢰를 저버렸다”며 “계약 해지와 관련하여 뤄신에 대한 법적인 조치 및 YH25448 기술관련자료 반환요청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 일각에서는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기업과의 제휴를 주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업체 루비소프트가 지난 21일 중국 지방정부 기관과 맺은 투자계약이 취소되자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무역보복이 아니냐는 의심이 일기도 했다.

유한양행 입장에서는 뤄신의 계약 불이행에 대한 정확한 사유도 알지 못한채 8년 만에 성사시킨 기술수출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약물의 약효나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다.

이번 기술수출 계약 해지로 유한양행이 직접적으로 입는 손실은 없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다. 뤄신에 전임상시험 자료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신약 후보물질을 넘겨주지는 않아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유한양행은 내년 하반기 이후 임상 1상시험 결과를 통해 신약의 가치를 높인 이후 YH25448의 글로벌 기술수출을 계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YH25448은 해외 전문시험기관에서 전임상 독성시험을 완료했고, 지난 23일 식약처로부터 비소세포폐암 환자에 대한 국내 임상1/2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유한양행은 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제 17회 세계폐암학회에서 세브란스 암병원과 YH25448의 전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폐암학회에서 YH25448의 전임상 결과를 포스터를 통해 발표했는데, ‘타그리소’보다 약효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에서도 이 물질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한미·녹십자 등도 해외 임상 중단..“글로벌 도약 성장통”

올해는 유난히 국내제약사들의 신약개발이 중단되거나 해외시장 도전이 좌초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5000만달러(약 550억원)을 받고 항암제 ‘올무티닙’의 기술을 넘겼지만 지난 9월 권리 반환을 통보받았다.

당시 올무티닙의 약효와 안전성에서 심각한 문제가 노출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올무티닙의 경쟁 약물로 평가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보다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베링거인겔하임이 최근 오스트리아 바이오업체 바이라 테라퓨틱스로부터 차세대 항암 기술을 사들였다는 점도 올무티닙의 개발 중단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미약품은 사노피와 얀센에 기술 수출한 ‘랩스커버리’ 약물의 후속 임상시험이 임상용 의약품의 공급 차질로 지연되거나 유예된 상태다.

지난 10월 녹십자는 미국에서 임상3상시험 중인 유전자 재조합 A형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에프’의 미국 임상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지난 2012년 임상3상시험에 진입한지 4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 미국 임상 중단 배경은 ‘사업성 저하’다. 희귀질환의 특성상 신규 환자 모집이 더디게 진행돼 임상이 예상보다 지연된데다 약효 지속시간이 긴 경쟁약물의 등장으로 미국 임상시험이 완료되더라도 상업적 성공 확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미국 시장 진출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녹십자는 이르면 올해 말 미국 식품의약품국(FDA) 허가가 전망됐던 혈액제제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IVIG-SN)’의 미국 시장 진출 시기가 내년 이후로 미뤄졌다. 지난해 11월 FDA에 제출한 면역글로불린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IVIG-SN)의 생물학적제제 품목허가 신청서에 대한 검토완료공문을 통해 제조공정 관련 자료의 보완을 지적받은 것이다. 녹십자는 FDA로부터 지적받은 제조공정을 개선하고 최종 승인 절차를 거쳐 내년 이후에 IVIG-SN의 최종 승인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 7월 자프겐에 7년 전에 기술 수출한 비만치료제 ‘벨로라닙’의 임상중단 통보를 받았다. 자프겐은 벨로라닙을 희귀질환 ‘프래더윌리증후군’, ‘고도비만치료제’, ‘시상하부 손상으로 인한 비만’ 등 3가지 치료제로 개발을 진행해왔는데, 지난해 프래더윌리증후군 임상시험에서 2명이 사망하면서 임상시험이 잠정 중지됐다. 임상시험 도중 사망한 환자와 벨로라닙과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프겐이 벨로라닙의 임상시험을 모두 중단키로 갑작스럽게 결정하면서 벨로라닙의 해외 진출에 차질이 발생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8월 차세대 신약으로 개발하던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YH14618’의 임상시험을 중단하기도 했다. YH14618은 단백질 일종인 펩타이드를 재료로 하는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로 수술 없이 척추 부위에 직접 주사해 디스크를 재생한다. 2009년 엔솔바이오사이언스에서 기술을 도입했는데 세계 최초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국내 임상시험 2상 결과가 위약 대비 통계적 유의성을 입증하지 못해 임상 중단을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제약사들의 신약 성과가 많아지면서 불가피하게 실패사례가 등장하는 것 뿐이라고 진단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산업에서 신약개발은 성공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아 임상중단이나 계약 파기 가능성은 늘 잠재돼있다”면서 “과거에는 신약 수출 성과 자체가 적어 실패 사례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최근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또는 기술수출 사례가 급증하면서 실패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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