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융성’, 허탈을 희망으로

입력 2016-12-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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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 대한민국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의 첫 구절이다. 이어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국정운영의 4대 비전으로 담아내고,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 ‘국민 모두 공동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아 주실 것을 부탁하며 함께 힘을 합쳐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겠다’ 등이 취임사의 주요 내용이다.

얼마 있으면 대통령 취임 4년이 된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온 백성이 더 나은 세상이 되리라는 희망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사회 각 방면의 여러 계층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취임사에 녹여진 뜻을 개개인의 셈법으로 미래를 그릴 것이다.

특히 이번 취임사에 문화예술 관계자에게는 경천동지할 내용이 발표되었다. ‘문화 융성’이 4대 국정기조에 포함됨은 물론 ‘문화’라는 멋진 단어가 늘 비중 있게 다뤄진 ‘경제’와 함께 나란히 19번이나 언급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었다.

거기에 문화재정을 점진적으로 늘려 정부 예산 규모의 2%를 달성하겠다는 약속은 문화예술 종사자들에게 끝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었을 것이다. 선진국과 달리 문화예술 관련 예산은 정치, 경제, 복지 분야에 비해 항상 부차적으로 여겨졌던 터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했나. 요즈음 일명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들썩이고 시끄럽다. 수사당국이나 언론은 연일 양파 속을 들여다보며 한 겹씩 벗겨 나가고 있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어떻게 선진국을 바라보는 나라에서 이렇게 수치스러운 일이 자행될 수 있는가. 국가 위상이 말이 아니다.

‘냉수 마시다 체하면 약도 없다’ 하여 우물가 여인이 급하게 물을 찾는 사람에게 바가지에 버들잎 한 잎을 띄워 주었다는 설화가 있다. 여인의 지혜로움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버들잎은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일상사 급하게 행동하여 낭패를 보게 되니 절차를 중시하라는 의미가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도 모든 일을 속전속결로 처리한 결과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유능한 일선의 공직자들을 무시하여 국가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다. 참으로 통탄스럽다.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문화 융성’으로 열겠다던 정부는 문화예술계의 염원을 저버렸다. ‘문화 융성’으로 국민 행복을 실현할 문화체육관광부가 체육계 비리, 문화 창조융합벨트 구축,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인사 개입 등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엘리트 부처라는 자긍심에 흠집이 나며 위상이 흔들리고, 성실하고 묵묵히 소임을 다한 공직자는 할 말을 잊고 있다. 전국 문화예술 관계자들도 똑같은 심경이다.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예술적 역량과 창의적인 국민성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문체부는 이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의기소침하지 말고 문화 융성을 통한 창조 경제·국민 행복을 실현할 책무가 있다. 차세대를 위한 문화창조융합사업은 문제점을 보완하여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 관련 법을 확대해 원로예술인, 청소년 예술지망생, 시민예술가, 장르별 예술인, 지역 문화예술의 자생력을 키우는 예술행정가, 예술을 좋아하는 기획사 대표, 예술계에 몸담은 배고픈 자유 직업인에 대한 활성화 정책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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