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개명(改名)의 숨은 뜻?

입력 2016-12-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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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교수

수업 시간 중 학생들 이름을 부르노라면 의외의 호기심이 발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름이 ‘고은아’였던 학생에게 누가 지어준 이름이냐 물었더니 ‘아빠가 영화배우 고은아를 너무 좋아하셔서’란 답이 돌아왔다.

한번은 ‘최귀덕’이란 이름이 눈에 띄어 어찌 된 사연인지 물었는데, 민망하게도 눈물을 글썽이는 탓에 무척이나 당황했던 적이 있다. 사연인즉 아빠 엄마가 지어준 원래 이름은 최민정이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동회(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가셨다가 손녀딸 이름을 잊어버리셨단다. 그래서 즉석에서 ‘우리 손녀딸 귀하고 덕성스럽게 살면 되지’ 하시며 귀덕(貴德)이라 작명(作名)하셨다는 게다. 덕분에 자신은 민정이란 예쁜 이름 대신 귀덕이란 촌스런(?) 이름으로 불렸고, 이름 이야기만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는 웃픈 사연이었다.

이름으로 말하면 내게도 사연이 있다. 조산원의 산파가 나를 받았다는데, 엄마의 배부른 모습이 영락없이 아들이었다 한다. 집안 어르신들도 내심 손자가 태어나길 기다리셨건만, 그만 손녀가 태어나고 말았다. 실망한 외할머니께서 “그럼 인사동에서 태어난 계집아이니 인희(仁姬)로 하자”고 하셔서 만들어진 이름이라 한다.

2년 후 셋째도 딸이 태어나자 엄마는 당시 꽤 이름난 작명소를 찾아가셨다 한다. 간 길에 둘째 딸 이름이 어떤지 물었더니 작명가 왈 ‘인희는 조실부모할 이름이니 은혜 혜(惠), 보배 진(珍), 혜진으로 바꿔 주라’고 했단다. 그 길로 내 이름은 인희 대신 혜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까지 혜진이란 이름을 쓰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호적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름을 바꾸려면 당시엔 재판을 받아야 했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 부모님께선 “그동안 새 이름을 만 번 이상 불렀을 테니 액땜이 되었을 게야”라고 합리화(?)하시곤 호적 이름인 인희를 다시 쓰자고 하셨다.

한데 이름이 바뀐 사건은 내게 예상외로 큰 혼란과 충격을 안겨 주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까지 사귀었던 친구 대부분을 잃었고, 고등학교 땐 새로운 이름에 적응하면서 그에 걸맞은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지독한 사춘기’를 보내야만 했다.

물론 최근엔 개명 작업이 상대적으로 손쉽게 이루어져 놀림감이 되었던 이름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름을 자유롭게 바꾸고 있는 듯하다. ‘필례’라는 이름이 싫어 ‘우주’로 바꾼 제자, ‘진’ 이란 외자 이름을 ‘유진’으로 바꾼 제자, ‘수자’란 이름 대신 ‘수안’으로 불러 달라는 선배 등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개명하는 경우를 만나고 있다.

와중에 요즘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일가족의 개명 소식을 접하자니, 혹여 숨겨진 의도는 없었을까 의구심이 밀려온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최도원(崔道源), 최상훈(崔尙勳), 최퇴운(崔退雲), 공해남(孔亥南) 등의 이름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최순실 역시 최서원으로 개명했다 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실상 자신은 최서원인데,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것에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이다. 딸 정유라의 예전 이름은 정유연이었다 하고, 조카 장시호의 원래 이름은 장유진이었다 한다.

사람의 운명을 정확히 읽어 내려면 사주·관상·전생을 골고루 보아야 하는데, 그중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도 4 ~ 5%는 되니 무시해선 안 된다는 통설이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마도 이름을 바꾸는 사람들 마음 한구석엔 개명 이전의 삶에서 심기일전하여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의지도 있을 것이다. 또 이름을 바꾸면 왠지 운명 또한 멋지게 바뀔 것이란 꿈을 꾸기도 할 것이다.

최씨 일가의 개명도 이런 소박함에서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적을 미루어 짐작건대 개명을 통해 무언가 부정한 것을 숨기고, 진정 부끄러운 것을 감추고, 극심하게 부패한 것을 덮기 위한 저의가 있었으리란 심증이 고개를 든다. 이들이 개명하던 시기를 전후하여 이들 주변에 과연 어떤 의미심장한 변화가 있었는지 세밀히 추적함으로써 물증을 확보하는 작업, 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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