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사를 계획했을 때 내 딴에는 버릴 책과 팔 책을 구분해서 상자에 따로 담아 놓았다. 헌책 사고파는 곳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이 넘도록 내가 한 짓은 아무것도 없다. 팔기도 아깝고(몇 푼이나 받겠어?) 버리기는 더 아까워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다가 이사 날을 맞게 됐다. 이삿짐 인부들이 투덜거렸다. 책이 우체국 박스 6호짜리로 300개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책 많은 게 무슨 자랑이랍시고 그대로 다 싣고 갔다. 문제는 집은 더 커졌는데 전에 살던 곳보다 서가가 줄어든 것이었다. 그 전에도 두 겹 세 겹씩 책을 꽂아두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았지만 절대적으로 공간이 부족했다.
내가 그동안 책을 아주 안 버린 건 아니다. 하지만 버렸다가 도로 들고 오거나 남이 버린 책들을 얼씨구나 하고 주워 오기도 했으니 사실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주워온 책을 다 읽었느냐, 아니 조금이라도 읽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데리고 산 것뿐이다.
소동파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이목을 즐겁게 하면서 쓰기에도 적절하고 써도 닳지 않으며 취해도 고갈되지 않고 똑똑한 자나 불초한 자나 그를 통해 얻는 바가 각기 재능에 따르고, 어진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그를 통해 보는 바가 각기 분수에 따르되 무엇이든 구하여 얻지 못할 게 없는 것은 오직 책뿐이다.” 그렇다. 그러니 책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하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다. 책을 쌓아둘 공간이 없으니 그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집 안이 정리가 되지 않게 생겼다. 제에발 책 좀 버리라는 아내의 회유 공갈 협박에(말을 안 들었다간 대판 부부싸움이 나게 생겼다) 사나이 모진 마음 굳세게 먹고 이사 온 지 1주일 된 날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버리기 시작했다. 인부들이 상자째로 쌓아둔 채 가버린 게 많아 무슨 책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다 헤집고 들여다보아 분류하며 책을 꽂으면서 버릴 걸 고르려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버릴까 말까 던졌다 꽂았다…, 허리도 무지 아팠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 지역도서관에 찾아가 헌책도 받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2011년 이후 출판된 것만 받는다고 했다. “와서 가져갈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게는 못 한다고 했다. 좀 기분이 상했지만, 그래도 갖다 주려 하다가 결국 한 권도 기부하지 못하고 그냥 내다 버리고 말았다. 아파트의 쓰레기 처리장에 마구 마구 책을 버리고는(열 상자도 넘는다) 먼발치에서 누가 책을 가져가나 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아, 내 책이 몽땅 저렇게 쓰레기가 되는구나. 이럴 거면 진작 버리고 올 것이지 돈 처들여 이삿짐으로 싣고 와서 여기에 버릴 건 대체 뭐람? 내가 이러려고 책을 아끼고 사고 그랬던가?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아직도 책 정리는 다 끝나지 않았다. ‘피눈무으를 흘리며언서’ 이번 주말에도 책과 씨름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2016년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