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주요국가들이 자국 통화 가치 방어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미국 달러화의 초강세 여파에 아시아 통화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하자 역내 국가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소속 10개국이 독자 통화스와프 규모를 현행 720억 달러에서 96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3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이들 13개국은 오는 5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재무장관 회의에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체제(CMIM) 확충에 합의할 예정이다. CMIM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 국가들이 만든 통화스와프 틀이다. 역내 금융위기 발생 시 국제통화기금(IMF) 지원과 관계없이 독자적 판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금을 만들자고 합의하면서 탄생하게 됐다. IMF의 지원 결정에는 절차가 복잡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끼리 신속한 자금 융통을 돕자는 취지다. CMIM의 전체 기금은 2400억 달러다. 이 중 13개국의 독자적 판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금 규모를 이번에 720억 달러에서 960억 달러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통화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 상호 교환하는 외환거래다. 환율과 금리 변동에 따른 환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어 외화 유동성 확충에 요긴한 수단이다.
당초 한·중·일 3국은 자금의 부실을 우려해 통화스와프 범위 확대에 부정적이었으나 한국과 일본 정부가 지난해 말 실무회의에서 범위 확대에 뜻을 같이하게 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다만 개별 국가의 물가상승률과 외환보유액 등 재정 운영과 달러 유동성 지표 등을 지원 조건으로 내걸어 대손 위험을 방지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사실상 미국발 아시아 외환위기 예방을 위한 공동 대응이다. 최근 외환시장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작년 12월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고조되자 달러 대비 말레이시아 링깃 가치는 4.4링깃으로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태국 바트화 가치도 지난해 가을 이후 5% 하락했다.
특히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공식 취임을 시작으로 유럽 국가의 각종 선거와 투표가 예정돼 있어 세계 정치 관련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연준이 올해 세 차례 추가 금리인상을 시사한 터라 아시아 금융시장이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13개국은 CMIM와 함께 하루간 양자 통화스와프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미 일본은 말레이시아 태국과 양자 통화스와프 체결 협상에 들어갔다. 중국도 지난 2015년 11월에 체결했던 인도네시아와의 통화스와프 규모를 확대, 말레이시아와 태국과는 협정 기한 연장을 논의하고 있다. 다만 중국이 다자간보다는 양자 협력을 중시하고, 여전히 스와프 범위 확대에 부정적이어서 이번 공동대응 방침에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