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28.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입력 2017-01-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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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희생양이거나 욕망의 화신이거나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생몰년도 미상)은 태조의 제16비이다.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대광(大匡) 왕규(王規), 아들은 광주원군(廣州院君)이다. 언니는 태조의 제15비인 광주원부인이며, 동생은 혜종의 제2비인 후광주원부인이다.

소광주원부인의 세 자매는 태조와 그 아들 혜종에게 대를 이어 납비(納妃)되었다. 이는 그녀들의 아버지 왕규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말해준다. 이 같은 사례는 다른 집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황해도 서흥의 호족 김행파는 서경으로 가는 태조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두 딸에게 하룻밤씩 모시고 자게 하였다. 이후 그녀들은 승려가 되었는데, 태조가 이를 알고 대서원, 소서원 두 절을 지어 살게 하였다. 또 견훤의 사위였던 박영규는 고려에 귀순한 뒤 딸 하나를 태조의 비(동산원부인)로, 또 다른 딸 두 명은 정종의 비(문공왕후, 문성왕후)로 바쳤다.

김행파와 달리 박영규는 후백제의 왕실 출신이었다. 그런데 왕규가 세 딸을 모두 비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가 박영규와 맞먹을 정도의 실력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막강한 힘을 가졌던 왕규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외손자 광주원군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조에게는 무려 25명의 왕자가 있었고, 제16비 소생인 데다 출생 연도도 한참 뒤라는 점에서 광주원군의 왕위 계승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왕규는 반역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왕규의 1차적 제거 대상은 혜종이었다. 왕의 침실에 자객을 잠입시켜 시해하려 했으나 왕이 깨어나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후 왕규는 직접 도당을 이끌고 왕의 침실 벽을 뚫고 들어가 모역을 감행했지만 왕이 미리 알고 침소를 바꿔 실패했다. 두 경우 모두 혜종은 알면서도 왕규를 문책하지 못했다. 이후 왕규는 태조의 후비들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충주 유씨계 왕자인 왕요(제3대왕 정종)와 왕소(제4대왕 광종)를 참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혜종은 오히려 자기의 딸을 왕소에게 주어 이들과의 연대를 굳건히 하였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혜종은 즉위 2년 만에 중병이 들었다. 왕요는 왕규가 다시 모반을 감행할 것이라 여겨 서경의 왕식렴 군대를 불러들였다. 혜종 사후 즉위한 정종은 왕규를 갑곶으로 추방하고 다시 사람을 보내 목을 베었으며 그의 도당 300여 명도 처단하였다. 고려사에는 광주원군이 그 후 어디에서 죽었는지 모른다고 기록돼 있어, 왕규의 제거 뒤 왕자도 살해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소광주원부인 역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아버지와 뜻을 같이했을까? 아들을 옥좌에 앉히고 싶었을까? 역사는 말이 없다. 그녀는 아버지의 헛된 욕망에 희생된 비극의 여인 혹은 잘못된 것을 탐한 욕망의 여인으로 간주될 것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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