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선(39) 청와대 경호실 행정관이 12일 대통령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나서 최순실(61) 씨의 청와대 출입여부 등 핵심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재판관들이 수차례 ‘그것은 직무상 비밀이 아니라서 증언해야 한다’고 재촉했지만, 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이 행정관은 수차례 위증 정황이 있는 진술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전 10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을 열고 이 행정관을 증인으로 세웠다. 소추위원과 재판관들은 이 행정관이 최 씨를 차에 태우고 청와대를 드나든 적이 있는지, 청와대 경내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는지 등을 물었지만 그는 ‘직무상 비밀은 말씀드릴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 9조 1항은 경호실 소속 공무원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행정관은 이 조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 행정관이 계속 답변을 피하자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은 “최순실 씨의 출입이 왜 비밀이냐”고 따져 물었다. 강 재판관은 “증인 스스로도 대통령 비공식 업무를 맡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직무상 비밀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의 지인(최순실)이 청와대 관저에 출입하는 것도 직무상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증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행정관은 이후에도 “출입과 관련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다”며 버텼다.
이 행정관은 그러나 박 대통령이 서울 신사동 의상실에 대금을 갖다주라고 한 부분은 상세히 진술했다. 박 대통령이 의상대금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서류봉투에 무언가를 넣어서 줘서 전달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봉투를 열어보진 않았지만 만졌을 때 촉감으로 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3차 변론기일에 윤전추(38) 행정관이 서술한 내용과 동일하다.
소추위원 측은 “증인이 오늘 충분히 준비한 답변을 하는 건 좋은데, 허위진술을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검찰에서는 의상실 대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가 최 씨의 의상대금 대납 의혹이 불거진 이후에 말을 바꾼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행정관은 이에 대해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한 날 정신이 없었고, 긴장되고 당황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다보니 제대로 발언을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이진성 재판관은 “검찰에서 조사받고 난 뒤에 진술조서를 다시 읽어보고 서명날인 한 것이냐”고 물었고, 이 행정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진술을 잘못한 걸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왜 고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이다.
소추위원 측은 이 행정관이 사용한 ‘대포폰’에 박 대통령의 전화번호가 저장됐던 걸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삭제한 정황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말 검찰은 이 행정관의 개인 전화와 업무용 전화, 차명으로 개통한 전화 3개를 압수했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차명으로 개통한 전화 잠금을 풀어달라고 이 행정관에게 요구했다. 이 행정관은 이 과정에서 저장된 전화번호를 한 개 삭제했다. 소추위원 측은 삭제된 번호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대포폰에 저장된 대통령의 전화번호를 지운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하지만 이 행정관은 “제가 긴장을 해서 손을 덜덜 떨고 있다가 실수로 조작해 그랬다(삭제했다)”고 해명했다. 소추위원 측은 황당하다는 듯 “비밀번호를 푸는데 어떻게 전화번호가 지워지냐”고 물었지만 이 행정관은 “조작 실수”라고 재차 답했다.
이날 재판관들은 수차례 이 행정관의 답변에 깊은 의구심을 표시했다. 강 재판관은 “대통령이 돈봉투를 외부에 갖다준 것은 비밀이 아니라서 말하고, 지인(최순실)의 출입 사실은 비밀이라서 답을 못한다고 하는데, 경호 전공 박사학위를 가진 증인의 비밀 기준은 뭔가”라고 물었다. 강 재판관은 “대통령이 외부에 돈을 전달하라고 한 게 더 큰 비밀인 것 같은데, 최순실 출입에 대한 증언을 막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안창호 재판관도 “사실대로 말해야 억울함이 없다, 어차피 다른 증인이 나서면 밝혀질 문제”라고 말했고, 이정미 재판관은 “‘최 선생님 들어가신다’는 문자를 보낸 것은 증인이 같이 들어간다고 한 것으로 보이는데 차에 태우고 간 적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위증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