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업ㆍ건설 등 수주산업의 지정감사제가 확대된다. 지정감사는 기업이 금융당국에서 정해주는 회계법인과 외부감사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제도다. 상장사들이 낮은 가격에 감사를 지정하는 ‘회계쇼핑’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13일 발표한 회계제도 개혁안은 지정감사로의 전면적 전환이라기보다는 ‘선택적 감사제’로 평가된다. 지정감사는 예를 들어 A라는 회계법인을 금융당국이 지정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놓은 방안은 기존 회계법인을 제외하고 기업이 골라온 B, C, D 중 한 곳을 금융당국이 지정해 주게 된다. 금융당국으로서는 매번 회계법인 한 곳을 직접 고르는 부담을 피할 수 있다.
대상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거나 △지배구조나 재무특성상 분식회계에 취약점이 있는 곳 △회계투명성 유의가 필요하다고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경우다. 수주산업을 비롯해 채권단이 대주주인 기업 등이 주요 대상인 셈이다.
지정감사제가 대폭 확대될 것을 우려한 기업들은 한숨 돌리게 됐다. 대기업 관계자는 “금융위가 제시한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기업들이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회계법인들은 이번 금융위의 회계제도 개혁안이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유감사와 지정감사를 섞은 혼합감사제 실행도 불투명할 뿐 아니라 표준감사시간도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제도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그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했다.
금융위는 표준감사시간의 경우 한국공인회계사회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이를 자율 규제하기로 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선택 감사제를 일부 확대하는 정도로는 회계업계가 겪고 있는 고질적인 감사보수 하락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익의 대부분이 컨설팅, 자문보다는 감사에 치중된 중소 회계법인의 경우 경영 상황 악화가 지속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회계업계는 금융위가 1월 말에 확정 발표한 회계제도 개혁안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 중소 회계법인 대표는 “정부는 회계 제도를 개선하기 보다는 회계업계를 개혁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위는 이번 회계제도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감사 대상회사에 대한 매수 목적의 인수합병(M&A) 실사, 가치평가, 자금조달과 투자 관련 알선 중개업무를 금지했다. 또 금융당국이 품질관리 기준을 정해 회계법인을 점검한 뒤 등급을 부여한다. 상장회사 감사 자격을 일정 등급 이상으로 제한하려는 방안이다.
이 때문에 회계업계는 금융위에 기대기보다는 의원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을 지속 추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미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상장ㆍ금융사가 6년 동안 자유롭게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되 이후 3년은 반드시 금융당국이 정하는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도록 하는 관련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밖에도 8개의 관련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금융위가 담지 않은 사안들은 올해 의원 입법을 통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