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국내 제약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보험 약가제도로 지목된다. 장기간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신약을 개발해도 보건당국이 제 값을 쳐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보건당국은 지난해 약가제도 개편을 통해 글로벌 혁신신약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의 약가 산정기준을 종전보다 상향 조정하며 제약업계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약가제도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다. 제약사들이 의약품을 시장에 출시한 이후에도 다양한 사후관리 장치에 지속적으로 약가인하 가능성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은 약가 사후관리도 재정비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제약사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과연 우리나라 약가 사후관리는 무엇이 문제일까.
◇특허만료 신약 가격인하·사용량 약가연동제 등 가동..복지부 "개선작업 착수"
16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부터 약가 사후관리제도 개선 협의체를 운영, 약가사후제도의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정부, 공익, 제약, 가입자, 전문가 등 각 직종별 대표가 참여하는 협의체에서는 약가 사후관리제도 운영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작업을 진행한다. 지금까지 실무회의 2번 열어 개선 과제를 추려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협의체 실무회의를 통해 약가 사후관리 개선 과제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향후 실무회의와 전체회의를 지속적으로 열어 개선 확정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아직 발표 및 시행 시기는 정해진 것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에서 의약품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외 제약사들은 약가 사후관리제도에 대해 “다양한 사후 약가인하 장치가 동시에 가동되면서 중복 약가인하 가능성에 노출돼있고 약가 사후관리제도가 체계화되지 않아 약가인하 시기와 인하 폭에 대한 예측성이 떨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국내 약가 사후관리 제도는 ‘실거래가상환제’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라는 2개의 제도를 큰 축으로 운영된다.
우선 실거래가상환제에 따른 약가인하 체계는 상시 가동된다. 1999년 11월부터 시행된 실거래가상환제는 보험상한가를 시장에서의 거래가격으로 내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고시가상환제가 적용됐던 기존에는 보험의약품의 고시가격과 실거래가의 가격 차를 인정해줬는데 제약사들이 약을 싸게 팔아서 유통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약물 과다사용의 요인이 된다는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다.
‘실거래가 조사에 의한 약가인하’가 실거래가상환제에 근거한 제도다. 보건당국은 정기적으로 전국 병·의원 및 약국을 대상으로 의약품의 거래 현황을 조사하고 제약사·도매상과의 거래과정에서 보험상한가보다 낮게 거래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하면 해당 의약품의 가격을 인하한다.
실거래가 조사에 의한 가격 인하 기준은 가중평균가격이다. 가중평균가격은 약제 실거래가 조사를 한 결과를 기준으로 의약품 공급업자가 요양기관에 공급한 약제에 대한 총 공급금액을 총 공급량으로 나눈 가격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보험상한가 100원짜리 의약품 A가 연간 10개 팔렸는데 5개는 100원, 5개는 90원에 거래됐을 경우 가중평균가는 95원이다. (총 판매금액 950원÷총 판매량 10개). 실거래가 조사를 통해 A 제품의 보험상한가는 5원 떨어진다. 당초 정부는 매년 실거래가를 조사해 약가를 인하했지만 지난해 약가제도 개편과 함께 약가인하 주기를 1년에서 2년으로 조정했다.
최근 이종혁 호서대 제약공학과 교수가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의뢰로 진행한 ‘우리나라 약가 사후관리제도 현황 분석 및 합리화 방안 연구’ 보고서(약가사후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2만3257개 품목이 실거래가 조사에 따라 상한금액이 인하됐다. 이들 제품의 평균 인하율은 3.4%로 나타났고, 재정절감 추정액은 약 5341억원으로 추정된다.
실거래가 조사 가격인하를 기반으로 2006년 시행된 ‘약제비 적정화 방안’ 이후 제네릭 등재시 신약의 가격인하, 사용량-약가연동제, 급여범위 확대의약품 약가인하 등이 동시에 가동된다.
제네릭 등재에 따른 가격인하 구조를 보면 제네릭 발매시 오리지널 의약품의 보험약가는 종전의 70%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후 1년이 지나면 특허만료 전의 53.55%로 약가가 내려간다. 제네릭은 처음에는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 의약품의 59%까지 약가를 받을 수 있고 1년 후에는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53.55% 가격으로 내려간다. 201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총 54개사 231개 품목의 의약품이 특허만료로 가격이 조정됐다.
2009년부터 시행 중인 사용량-약가 연동제는 보험 의약품이 예상보다 많이 판매되면 제약사와 건보공단 간 협상을 통해 약가를 인하하는 제도다.
신약 등재시 설정한 예상사용량보다 30% 이상 증가하거나, 전년대비 청구량이 60% 이상 증가한 제품이 사용량 약가 연동제에 따른 약가 인하 대상에 포함된다. 사용범위 확대로 사용량이 크게 늘어도 약가가 내려간다. 예를 들어 위궤양 치료에만 사용되는 약물이 위염까지 사용 범위가 증가한 결과 사용량이 급증하면 가격을 인하하는 방식이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총 431개 품목에 대해 평균 약 5%의 약가인하가 이뤄졌다. 누적 기준 약 218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절감 효과가 사용량 약가 연동제 시행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급여 기준 등의 변동으로 사용량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사전에 먼저 약가를 깎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2014년 이 제도 도입 이후 급여범위 확대로 47개 품목의 약가가 인하됐고 인하 폭은 1.0~3.9%로 집계됐다.
◇다양한 약가 사후관리체계 동시 가동..업계 “중복인하 빈번·예측성 저하”
다양한 약가 사후관리가 동시에 가동되면서 중복인하 사례도 발생한다.
일양약품의 위장약 ‘놀텍’은 지난 2009년 12월 발매된 이후 지금까지 4차례 약가가 인하됐는데, 그중 3번은 '사용량 약가 연동제'과 관련된 가격 인하였다. 지난 2013년에는 환자 수가 많은 역류성식도염 효능이 추가되자 사용 범위가 확대돼 판매량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약가를 미리 깎았다. 이후에도 매출이 늘어나자 다시 한번 약가가 내려갔다. 놀텍의 보험약가는 처음 출시됐을 때보다 17.9% 내려갔는데, 향후 제네릭이 발매되면 추가로 46.45% 깎이게 된다.
보령제약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 120mg’은 지난 2014년 사용량 약가연동제가 적용돼 3.2% 인하된데 이어 지난해 초 실거래가 조사에 따른 조정으로 추가로 0.9% 떨어졌다. 한국먼디파마의 진통제 ‘노스판패취’는 2015년 사용량 약가 연동제 적용으로 약가가 5.4% 인하됐는데도 이듬해 또 다시 실거래가 조사로 0.4% 떨어졌다.
업계에서 "해외에서 운영 중인 모든 사후 약가관리 제도를 도입하면서 약가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약가 중복인하로 인한 소송도 제기된 적이 있다. 보령제약의 위염치료제 ‘스토가’는 지난 2009년 7월 290원의 보험약가를 받고 발매된 이후 2013년 4월1일 제네릭의 등장으로 203원으로 떨어졌다. 1년 후 2014년 4월1일 스토가의 약가는 155원으로 떨어졌는데 같은 달18일 전년 대비 처방실적이 급증했다는 이유로 사용량 약가 연동제가 적용돼 155원에서 147원으로 4.9% 인하됐다. 동시에 여러 약가인하 장치가 가동되면서 같은 달에만 약가가 두 번 떨어진 셈이다. 보령제약은 약가인하가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약가 사후관리 제도의 잦은 변경도 정책의 예측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제네릭 등재시 신약의 약가인하 비율은 과거 특허 만료 전의 80%, 제네릭은 68%로 약가가 책정됐지만 2012년 약가제도 개편으로 인하 기준이 큰 폭으로 내려갔다.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2014년부터 약가인하 대상에 ‘처방실적 10%·50억원 이상 증가’도 새롭게 반영됐다. 매출 규모가 큰 제품의 약가인하를 유도해 재정 절감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 때 연간 청구실적 15억원 미만인 제품은 사용량 약가 연동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급여 확대에 따른 사전 약가인하도 2014년 도입됐다.
이종혁 교수의 ‘약가 사후관리 보고서’를 보면 제약사 실무자 62명을 대상으로 약가 사후관리제도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조사 대상 중 93%가 ‘중복적 가격인하’를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설문 대상 중 90%는 ‘잦은 가격인하’를 꼽았다. ‘가격인하 중심의 정책’이 문제라고 답한 응답자도 95%에 달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양한 약가인하 기전이 동시에 적용되면서 언제 얼마나 가격이 인하될지 예측할 수 없다”면서 “일부 제품의 경우 보건당국이 과도한 폭의 자진인하를 유도하기도 하는데, 제약사 실무진 사이에서는 많이 팔아서 가격이 인하되는 것보다 적게 팔아서 가격이 인하되지 않을 때가 이득이라는 얘기마저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종혁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약가 사후관리제도는 도입 당시 각각의 배경과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명확한 정책적 목표없이 필요에 따라 제도를 도입하거나 개정하면서 너무 많은 제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약품비 관리의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의약품 처방행태 및 사용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사후관리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