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고승철 ‘여신(女神)’

입력 2017-01-16 10:38 수정 2017-01-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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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작가의 아주 재미있는 소설

사람마다 선호가 다르듯이 좋아하는 책의 장르도 다르다. 서평 코너도 서평자의 선호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제껏 논픽션을 소개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서평자 자신이 논픽션보다 픽션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언론인 출신인 고승철의 ‘여신(女神)’은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10명이 넘는 인물들이 20개의 주제에서 제각각 주인공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소설의 특징은, 한마디로 재미있다. 먼 나라 이야기나 먼 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중심으로 어디에서 들어보았을 법한 이야기가 그런 인물 이야기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대도 유럽의 다양한 도시들을 배경으로 전개될 정도로 스케일이 웅장하다. 작가는 파리특파원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경제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언론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이 연신 떠올랐다. “세상 경험 가운데 버릴 만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일찍부터 소설가로 입문해 집필하였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글이란 생각 때문이다. 다양한 인물 군상들은 그가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어디에선가 만났을 그런 유형의 인물일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창작해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 한국 땅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주인공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작가도 자신이 언론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소설에 입문할 수 있었던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늘그막에 문학에 입문한 게 다행이었다. 이런 경험적 자산 없이 열정만으로 문학청년 시절을 보냈다면 골방에 쪼그리고 앉아 재능의 한계를 통탄하며 얼마나 고뇌했겠는가.”

△몽고반점 △오드리 헵번 △위대한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클레오파트라 왕관, 한국에 오다 △룸살롱 마담의 화려한 변신 등 목차에서 소제목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어떤 글을 선물할까라는 호기심을 느끼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구성과 이런 문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과 신기함이 앞선다. ‘클레오파트라 왕관, 한국에 오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픽션다운, 너무나 픽션다운 문장이 등장한다. “갈레누스 성부님께서 고향 페르가몬(소아시아 지방)에서 숨을 거두실 때 ‘1900년이 지나면 머나먼 동방의 귀인이 방문하여 나이 100세 넘는 자손이 그를 접견할 것이로다!’라고 예언한 바 있소! 귀하가 그 귀인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소만… 성부님이 코리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신 것은 사실이오.” 황당한 내용이긴 하지만 픽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공의 상황이고 가공의 문장이다.

‘얄미운 X’에서 미곡상, 주요소, 버스회사 등 주로 현금 장사로 중견그룹에 오른 총수 탁종팔은 ‘콩나물값 깎지 마라!’가 가훈이다. 그가 가족들에게 일갈하는 말 속에는 남도 출신 저자 특유의 사투리가 마음을 끌어당긴다. “사람들은 돈 벌기가 에렙다(어렵다) 하면서 애낄라꼬만(아끼려고만) 하는데 남한테 이롭게 해봐라, 더 큰 돈이 자꾸 들어온다. 이기라(이것이라)! 절약하모(하면) 가난은 멘(면)하겄지만 부자는 될 수 없는 기라!” 외모가 연예인급인 딸 탁하연에게 머리 좋은 과외선생에게 시집가라고 명하는 탁 회장의 말투는 일품이다. “허허, 이 가시나가 말버릇이 와 그 모양이고? 길게 말할 거 없다. 니 신랑감이다!” 픽션에서 무슨 큰 지식이나 교훈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떻게 이런 배경에, 이런 인물 설정에, 이런 묘사가 가능할까라는 놀라움을 주는 소설이다. 재미를 구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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