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법원으로 향한 재계의 눈

입력 2017-01-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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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산업1부장

“응하지 않으면 보복을 당하는 것을 과거 국제그룹의 공중분해로, 그리고 아직 지금도 한진해운 등에서 일어난 것을 봤지 않습니까. 밉보일 각오를 하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요?”

최근 만난 재계 관계자들의 의견은 비슷했다. 인과 관계를 먼저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권력자가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법적인 책임을 무릅쓰고 협조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기업 환경에 대해 쓴소리를 이어나갔다.

지난해 검찰은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피해자라고 했지만, 특검은 뇌물을 제공한 범죄자로 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사건이지만, 시각은 전혀 달랐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속영장이 청구되며 오늘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430억 원대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따른 법률 위반(위증)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될 경우 특검 출범 이후 대기업 총수로는 첫 번째 구속자가 된다. 역대 삼성그룹 총수로는 처음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례이기도 하다.

특검의 최종 겨냥점은 당연히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다. 다른 그룹들의 총수도 수사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이들을 옥죄기 위한 가장 큰 카드로 ‘이재용’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아쉬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검은 지난해 12월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출국금지했다.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는데도 특검은 출국금지라는 강수를 뒀다. 그 결과 두 달간 발이 묶이며 해외 경영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됐다. 2015년 말 기준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394조 원으로 국내 증시의 30.2%를 차지했다.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시가총액은 약 260조 원에 달할 정도로 우리 경제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마윈, 손정의 등 글로벌 기업의 총수들이 트럼프 당선자 진영을 만나는 등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민·관이 함께 뛰고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출국길이 막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외교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일,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지금보다 훨씬 큰 글로벌 비즈니스 차질이 예상된다. 가장 큰 수출 시장인 미국이 적용하고 있는 ‘해외부패방지법(FCPA)’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FCPA에 따르면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뇌물죄를 적용받을 경우에도 미국 내 사업이 제한되고 거액의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경제에 반영될 것이다.

이런 심각성에 삼성은 18일 오전 사장단회의를 취소하는 등, 경영 활동을 잠시 중단하며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삼성 사장단 회의가 취소된 것은 2009년 1월 14일 이후 8년 만이다. 당시에는 사장단 인사가 임박해 불가피하게 취소했을 뿐, 경영상의 문제는 아니었다.

18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는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검은 공을 법원으로 넘겼다. 구속 여부를 놓고 법원의 판단은 삼성을 넘어 우리 경제계 전체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많은 건이라며 이번 심사를 지켜보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번 사태의 궁극적인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국정농단 사태 해결의 출발이 무소불위의 힘을 무기로 불법을 요구한 권력자가 될지, 아니면 이에 굴복한 기업인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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