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위구르족은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에서도 티베트와 함께 중국의 통치에 강렬하게 저항하며 독립을 추구해온 민족이다. 1759년 청나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래 수십 차례 독립운동을 벌였다. 1865년 잠시 독립했던 위구르족은 1949년 중국 지배체제에 완전히 편입됐다.
중국 정부가 2009년 7월 신장위구르 유혈사태의 배후로 지목한 레비야 카디르(1947. 1. 21~ )는 ‘위구르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여성이다. 가난한 위구르인의 딸로 태어난 카디르는 한족들의 이주조치에 따라 사막지대로 추방됐다. 15세에 결혼해 여섯 아이를 낳고 남편에게 구타당하다가 28세에 이혼한 후 시작한 세탁소를 기반으로 중국의 일곱 번째 부자가 된 그는 한때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 꼽히기도 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인민대표가 된 카디르는 독립운동가인 시디크 로우치를 만나면서 극적으로 삶이 변했다. 그는 1997년 초 이닝 지역에서 시위를 벌이던 위구르족을 중국군이 유혈 진압한 사건을 접한 뒤 위구르의 투사가 됐다. 위구르인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군 당국이 제대로 된 수사 보고서를 내놓지 않자 직접 실태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서 이를 폭로해 중국 사법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정협 위원 자격을 박탈당한 카디르는 2년 후 미국 의회의 인권 대표단을 만나러 가던 길에 체포돼 국가기밀 누설죄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방문을 앞두고 신병 치료를 위한 명목으로 겨우 가석방조치를 얻은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 가족과 재회했다. 2004년 국제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 ‘올해의 인권운동가’로 선정되고 2006년 제2차 세계 위구르인 의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카디르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