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단역배우를 하던 오드리 헵번(1929.5.4~1993.1.20)에게 1951년 잇따라 행운이 찾아온다. 그해 봄, 귀엽고 발랄한 헵번을 눈여겨본 프랑스 여성 소설가 콜레트(1873~1954)가 자신의 소설을 각색한 브로드웨이 연극 ‘지지’에 그녀를 캐스팅한다.
때마침 영화 ‘로마의 휴일’을 준비하던 윌리엄 와일러 감독도 연극을 보고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전격 발탁한다. 와일러 감독은 미국식 악센트가 없는 유럽풍의 배우를 찾고 있었다. 1955년 ‘로마의 휴일’이 개봉되자 대히트를 하며 그녀는 일약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다. 이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이 모두 성공을 거둔다. 그녀는 ‘헵번 스타일’이라는 자신만의 패션도 유행시킨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영화배우 겸 감독인 멜 페러와의 결혼과 이혼, 9세 연하의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 도티와의 재혼과 이혼으로 개인적인 아픔을 겪는다. 교육을 위해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을 오가며 헌신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녀 역시 가족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다. 때문에 이혼은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이혼의 아픔을 뒤로하고 1989년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으며 봉사의 삶을 산다.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베트남 등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린다.
건강이 나빠졌던 1992년에도 그녀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소말리아로 떠난다. 아랫배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소말리아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배고픔과 질병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대장암 진단을 받은 그녀는 스위스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생애 최후의 시간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