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내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 출범하면서 세계 무역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세계 무역질서가 재편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중국과 일본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정부는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 공백 사태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모습이다.
국내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해 볼 때 국정이 수습되기까지는 일러야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세계 무역전쟁 속에서 한국이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논란이 많은 공약의 이행을 위해 취임 당일 곧바로 당선인 시절 내놓았던 ‘취임 후 100일 계획’보다 훨씬 강경한 내용의 6대 국정기조를 제시했다. 국정기조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함께 기존 무역협정 위반 사례를 조사해 정부 차원의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기존 무역협정에 대한 재검토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포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2일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향후 한미 FTA 폐기로 대미 수출에 대한 관세가 FTA 발효 이전 수준으로 상승할 경우 한국 경제에 약 130억1000만 달러(약 15조3000억 원)의 손실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정부의 대책은 모니터링 수준에서 맴돌고 있어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취임 전까지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관례에 따라 면담 추진에 소극적이었다면 이제는 외교안보 라인 인맥을 동원해 채널 확보에 나서고 끈질긴 대화와 설득작업을 해야 한미 FTA를 살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트럼프 취임식 전날 기자들과 만나 “전문가들은 통상에 관해 후보 때 (강경) 발언과 다를 것이라고 예측한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는 정부의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정부는 대내외적 신뢰성 확보 차원에서도 한미 FTA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고 보고 있지만, 정부의 기대처럼 상황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자국의 산업과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로 중국 등 신흥국 경기가 냉각되고,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하는 등 미ㆍ중 간 무역 분쟁이 격화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통상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대미 통상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민관 공동 대응책을 강화하고, 상무관 회의를 개최하는 등 통상정책 동향을 예의주시한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23일 “미국 정부 보호무역주의의 우선 표적은 중국과 멕시코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트럼프 정부가 실제로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불확실성이 커 일단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