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41. 소혜왕후

입력 2017-01-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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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사업에 힘쓰고 ‘내훈’을 편찬하다

세조의 며느리, 덕종(의경세자)의 아내, 성종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시어머니, 연산군의 할머니. 이렇듯 복잡한 수식어가 붙는 주인공은 소혜왕후 한씨(1437~1504), 곧 인수대비다.

소혜왕후 집안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만큼 정치적 위세가 대단했다. 아버지 한확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를 때 적극 가담해 공신이 되었다. 더욱이 두 누이가 중국 명 황제의 후궁이었던지라 조선에 어려운 외교 문제가 닥칠 때마다 큰 역할을 도맡았다.

소혜왕후는 19세에 수양대군의 맏아들(의경세자)과 혼인했다. 혼인 직후 수양대군이 쿠데타로 왕위에 오르면서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혼인한 지 2년 만에 남편이 죽으면서 21세에 청상과부가 된 소혜왕후는 어린 세 자녀를 부여안고 사갓집으로 나왔다.

소혜왕후에게 복귀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그 뒤 12년이 지나서였다. 예종이 즉위한 지 14개월 만에 요절하자 소혜왕후의 둘째 아들(성종)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소혜왕후가 왕실로 되돌아오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예종의 아들을 제치고 본인 아들을 보위에 앉혔다는 결과 자체가 그 어떤 기록 못지않게 그녀의 야망과 정치적 역량을 말해준다.

궁으로 돌아온 소혜왕후는 가족들의 명복과 안위를 빌기 위해 불교에 의지하면서 불경 간행에 힘썼다. 대표적으로 1472년(성종 2)에 전국에 흩어진 불경 목판을 수집해 총 29편 2815권이라는 방대한 불경을 간행했다. 또 소혜왕후는 여성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과서로 ‘내훈’을 직접 지었다. 1475년 왕대비로 책봉된 해에 유교 윤리에 입각해 펴낸 이 책은 조선 최초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소혜왕후는 ‘내훈’에서 여성들이 길쌈만 하지 말고 수신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혜왕후는 “예기(禮記)에도 ‘여덟 살이 되면 비로소 글을 가르치고 열다섯 살이 되면 학문에 뜻을 두게 한다’고 했는데 어찌 딸에 대해서만은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인가? 그래도 되는 것인가?”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스스로에게 엄격하던 소혜왕후의 인생에 또 한 번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소혜왕후는 본인의 며느리이자 연산군의 생모를 폐위시키고 죽게 만드는 일에 크게 관여했다. 대역무도한 죄인도 아닌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모진 선택이었다. 성종이 임종 직전에 후환을 염려해 앞으로 백 년 동안 이 사건을 거론하지 말라는 유명을 남겼으나 세상엔 비밀이 없었다. 소혜왕후는 이 일로 손자 연산군의 원망을 받으면서 불행한 노년을 보내다가 결국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소혜왕후는 “수신이란 나뭇가지를 꺾는 일처럼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라고 했다. 수신에 힘쓴 소혜왕후의 말년이 흉흉했던 것은 지나친 권력 행사 끝에 찾아올 파멸을 예견하지 못해서였다. 세월을 잘 헤쳐 온 끝에 맞이한 참담한 결과여서 아쉽기만 하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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